'아내 살인 누명' 주장하는 20년 장기수… 재심은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입력
2024.02.12 16:00
2003년 장동오씨 사건 우여곡절 끝 재심
복역중 장기수론 두번째... 매우 희귀사례
높은 재심 문턱에 나홀로 청구 쉽지 잖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부인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던 '송정저수지 살인사건'. 정황증거로만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장동오씨가 다시 법정에 서 유무죄를 가릴 기회를 얻었다. 네 번째 시도만에 그의 재심 청구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졌기 때문.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이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두 번이나 불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까다로운 재심 요건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운전 사고" 주장에도 '살인' 혐의로 유죄

장씨의 사연은 2003년 7월 9일 오후 8시 39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삼거리 교차로 멀리서 한 화물 트럭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중앙선을 넘어 정면에 있던 송정저수지로 고꾸라졌다. 운전자였던 장씨는 이내 물 밖으로 탈출했지만, 조수석에 있던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의식을 잃은 채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처음엔 강력범죄라기보다는 단순 사고로 보였다. 하지만 △장씨 아내 앞으로 가입된 8억8,000만 원 상당 보험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인정돼야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부검결과 부인의 목과 가슴에 눌린 흔적이 남아있고 △차 앞 유리가 쉽게 떨어져 나간 정황 등이 추가로 확인되며 검찰은 장씨에게 살인 혐의를 달아 재판에 넘겼다.

장씨는 "졸음 운전을 했을 뿐, 일부 보험은 아내가 직접 가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아내를 죽였다는 직접 증거는 없었다. 법원은 그러나 검찰이 제출한 간접증거들을 유죄의 근거로 인정했다. 결국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2005년 대법원에서 장씨의 상고가 기각되며 형이 확정됐다. '엄마를 죽인 아빠' 장씨는 자녀들에게까지 외면당한 채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렇게 잊히는 듯했던 사건은 충남 서산경찰서 소속이던 전우상 전 경감의 재조사로 또다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3년에 걸친 조사 끝 그의 결론은 '무죄'. 수사기관이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다고 판단한 그는 2020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경찰이 엉터리 현장조사, 허위공문서 작성을 하고 검찰은 가혹행위와 끼워 맞추기로 수사를 조작한 정황을 발견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송정저수지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여럿 방영됐다. 여론도 서서히 '오판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심 전문인 박준영 변호사까지 합세해 2021년 12월 재심을 청구했다. 장씨를 살인범으로 취급한 수사 절차에 중대한 위법성이 있으니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취지였다. 결국 대법원은 지난달 장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최종 확정했다.

일반인에겐 멀고도 어려운 재심 절차

장동오씨가 재심을 받아낸 과정을 보면 마땅해 보이는 수순이지만, 사실은 이게 정말 만만치 않은 결과다. 복역 중인 장기수로서는 장씨가 두번째일 정도로 재심이 받아들여지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현행법상 재심 사유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원판결의 증거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또다른 재판에서 증명된 경우가 아닌 한, 청구인은 기존 결론을 명백히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구 단계에서부터 막히게 된다.

나아가 '증거의 신규성'에 대해 우리 법원은 보수적 해석을 적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9년 전원합의체에서 "과거 재판 때 피고인 과실로 제출하지 못했던 증거는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6명의 대법관이 "피고인 귀책사유 때문에 신규성을 부정하면 정의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7명이 '법적 안정성'을 택한 데 따른 결과였다.

살인 누명 가능성이 있는 사건의 경우 수형자가 장기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기 때문에, 오래 갇혀 있는 당사자가 혼자서 재심 단서를 확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 기각되면 같은 사유로는 재청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섣불리 나서기도 어렵다. 한 형사소송법 전문가는 "국가폭력 피해자 등 재심 필요가 있는 피해자들 상당수가 곤궁한 사정임을 감안하면 국선변호인 선임을 보장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 체계 전반에 영향 끼치는 재심

반면 문턱을 낮추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는 않다. 재심이 사실상 '4심'이 돼버릴 수 있어서다. 이럴 경우 3심제를 택하고 있는 법 체계가 흔들리는 동시에, 일선 법원의 업무 과중·재판 지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서울 지역 한 부장판사는 "지금도 재심을 민원 넣듯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 사유를 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절충안으로 "항고 조건을 제한하자"는 주장도 있다. 검찰은 일반 재판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불복할 수 있는데, 항고권 남용으로 재심 공판이 지연되는 걸 막자는 취지다. 장씨 역시 첫 개시 결정은 2022년 9월에 받았지만, 검찰의 두차례 항고 끝에 지난달 최종 확정됐다. 광주고검은 지난달 이른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재심 결정에 대해 항고장을 냈다.

재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재심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경우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증거가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서도 신속함이 생명"이라면서 "법원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사안에 있어서는 검찰 주장은 본안 소송에서 충분히 다투면 된다"고 강조했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이르면 다음달 국내 재심 제도와 관련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한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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