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술 희생양? 나치 스파이?...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 누군가는 전말을 안다

입력
2024.02.09 10:00
11면
<73>영국 웨스트미들랜즈 '완전범죄' 살인 사건
2차 세계대전 중 1943년 젊은 여성 유골 발견
피해자·가해자 신원 안갯속… 음모론만 넘쳐 나
경찰 비웃듯 의미심장한 낙서도 곳곳서 잇따라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분수령을 맞았을 무렵인 1943년 4월 영국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10대 소년 4명이 새 둥지를 찾아 웨스트미들랜즈주(州) 작은 마을 해글리의 숲을 헤집고 있었다. 느릅나무에 올랐던 무리 중 한 소년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속이 빈 나무 안에 하얀 해골이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해골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마에는 털 뭉치가 붙어 있고, 썩어 가는 살점이 있었어요." 겁에 질린 소년들은 도망쳤다. 당시엔 숲이 귀족의 사유지였던 탓에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며칠 뒤 가장 어렸던 토미 윌렛츠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털어놨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젊은 여성의 유골임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수사 난항… 경찰 조롱하듯 나타난 의문의 낙서

희생자의 추정 나이는 35세. 키 152.4㎝에 발 사이즈 240㎜. 연한 갈색 머리카락과 삐뚤게 난 아랫니. 한 번의 출산 경험. 손가락엔 값싼 금색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고, 파란색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을 신고 있었다. 입안에는 광택 있는 빳빳한 견직물인 태피터가 물려 있었다. 비좁은 공간을 볼 때 사후경직 전 몸이 따뜻할 때 시신이 유기된 것으로 짐작됐다. 시신을 부검한 제임스 웹스터 교수는 최소 18개월 전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게 당시 경찰의 결론. 하지만 피해자 신원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전시인 탓에 너무 많은 실종자가 있었다. 해글리 숲 인근 실종자 중에선 시신의 특징과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은 영국 전역의 치과의사와 접촉했으나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희생자가 성매매 여성이라거나 강간 피해자, 배척당하던 집시라는 설만 분분했다. 온갖 추측 속에 사건이 묻히려는 찰나, 이듬해 크리스마스에 질문이 하나 나왔다. "누가 느릅나무 안에 벨라를 넣었습니까?"

사건 현장 인근인 웨스트미들랜즈 주도인 버밍엄의 한 건물 벽에 흰색 분필로 쓰여 있던 낙서였다. 7.6㎝ 크기의 영어 대문자로 또박또박 적힌 한 문장. 누군가 사건 전말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건은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느릅나무 속 '벨라'는 누구였을까

우선 경찰은 1944년 실종 신고된 성매매 여성에게 주목했다. 해글리에서 일하다 3년 전 증발된 그를 다른 여성들은 '벨라'라고 불렀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종적을 더는 추적하지 못했다.

1953년 경찰을 찾은 '우나 모솝'이라는 여성의 제보도 경찰을 움직였다. 그의 남편 잭 모솝이 "판 랄트라는 이름의 네덜란드 출신 남성과 함께 '의식을 잃은 여성을 나무 안에 넣었다'고 가족들에게 털어놨다"는 내용이었다. 판 랄트와 동행한 네덜란드 여성이 차량 이동 중 술에 취해 의식을 잃자, 두 사람은 해글리 숲 나무의 빈 속에 넣어 뒀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깨어나지 않아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게 요지였다. 다만 남편은 시신 발견 전인 1942년, 신경쇠약으로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이미 숨졌다. 우나는 진실이라는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또 10년이 넘도록 함구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서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교수까지 가세한 '흑마술 희생양' 가설

각종 음모론이 난무한 것도 이 사건의 특징이다. 피해 여성이 흑마술의 희생양이라는 가설이 대표적이다. 느릅나무와 열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시신의 잘린 한쪽 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중세시대 마녀를 처형할 때의 관습으로 알려져 있다. 낙서에 등장했던 '벨라'도 피해자가 마녀로 몰려 처형됐다는 가설에 힘을 실었다. 주술과 예언 등에 쓰이는, 이른바 '마법 식물'로 알려진 '벨라돈나'가 연상된다는 점에서였다.

1945년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의 인류학자 마거릿 머리 교수마저 "죽은 여성이 흑마술의 희생양으로 사용됐다"면서 여기에 가세했다. 마녀의 몸을 속이 빈 나무에 넣어 영혼을 가두는 의식 도중 살해됐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범죄 현장이 고대 주술적 의식인 '영광의 손(hands of glory)'을 연상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특히 같은 해 2월 14일 인근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이런 의혹을 부채질했다. 70대 남성 찰스 월튼이 가슴에 큰 십자가가 새겨진 채 곡괭이로 땅 위에 꽂혀 숨진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사탄 숭배가 의심됐으나, 수사는 증거 부족으로 결국 종결됐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은 "마을 주민들은 누가 이 남성을 죽였는지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수사는 암초에 부딪혔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수사에 혼선만 안겨 준 가설이었다.



세계대전 중 가장 유력했던 독일 스파이설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에는 '나치 스파이 가설'이 힘을 받았다. 1941년 영국 케임브리지셔주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 체포된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 요제프 제이콥스의 연인이자, 독일 카바레 가수 겸 배우였던 클라라 바우얼이 가장 유력한 '벨라' 후보로 오랫동안 거론됐다.

전쟁 전 웨스트미들랜즈의 카바레에서 2년간 일했던 바우얼은 1906년생으로 벨라의 추정 나이와 얼추 비슷했다. 치열도 고르지 않았다. 버밍엄 사투리를 구사할 줄 알았던 바우얼이 나치 비밀요원으로 채용돼 연인인 제이콥스와 함께 스파이 조직을 만드는 지령을 받았다는 게 가설의 대전제로, '제이콥스가 낙하산을 타고 먼저 침투한 뒤 바우얼도 1941년 그의 뒤를 따라 웨스트미들랜즈로 낙하산 침투를 시도했다'는 게 골자다. 실제로 군수 공장이 몰려 있던 웨스트미들랜즈는 스파이 조직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가 감행한 이른바 '버밍엄 대공습'(1940~1943)의 주요 타깃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공연이나 영화 출연 등 바우얼에 대한 기록도 1941년을 기점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제이콥스가 1941년 8월 15일 런던타워에서 사형을 당한 탓에 이 가설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2014년 기밀해제가 된 영국 정보기관 MI5의 파일에서 체포 당시 제이콥스의 주머니에 있던 바우얼 사진이 공개되자, 이 가설엔 다시 힘이 실렸다. 하지만 바우얼이 1942년 12월 16일 독일 베를린에서 숨진 사실이 2016년 확인되면서 이는 완전히 폐기됐다.

다만 스파이설은 1953년 다시 한번 불붙었다. 클라라벨라 드롱커스라는 이름의 네덜란드 여성이 벨라로 지목됐다. 웨스트미들랜즈 북서부 도시 울버햄튼의 지역 언론 '익스프레스앤드스타'에 자신을 애나라고 밝힌 한 여성으로부터 제보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웨스트미들랜즈 내 군수공장 위치를 루프트바페에 넘긴 스파이 조직이 관여됐다'는 취지로, "영국 장교가 이 정보를 네덜란드인에게 팔았고, 네덜란드인이 또 다른 스파이에게 정보를 넘겼는데 벨라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파이 조직이 그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으며 사건을 새 방향으로 이끌긴 했으나, 역시 사건 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완전범죄'… 반세기 넘게 걸친 서스펜스

2018년 벨라의 얼굴이 75년 만에 복원됐다. 리처드 3세의 유골로 얼굴을 복원했던 캐롤라인 윌킨슨 던디대 교수가 발견 당시 촬영된 벨라의 사진을 토대로 얼굴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벨라의 유골이 사라진 사실이 드러났다. 여전히 새로운 결정적 단서는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결정적 증거를 잃어버린 셈이다.

1943년 초년병 기자 시절 이 사건을 취재했던 데일리미러 기자 출신 해리 트로먼스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우리는 아마 진실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라고 영국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그는 "무엇이든 알았을 수 있는 사람이나, 그것을 행했을 수 있는 사람은 죽었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는 물론, 피해 여성 신원이나 살해 정황조차 규명되지 않은 이례적인 '완전범죄'다. 비밀을 담고 있던 느릅나무도 병에 걸려 쓰러졌다. 하지만 대중의 머릿속엔 여전히 각인돼 있다. "누가 느릅나무 안에 벨라를 넣었습니까?"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