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한국대사의 새삼스러운 "하나의 중국 존중" 발언...중국에 유화 시그널?

입력
2024.02.05 18:44
정재호 대사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 변함없다"
한중일 정상회의 미뤄지자 대만 발언 수위 낮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5일 대만 문제와 관련,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나섰다. 한국 정부가 의장국인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중국 측의 소극적 태도로 차일피일 미뤄지자 새삼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며 유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베이징 주중대사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정 대사는 지난달 13일 독립주의 성향인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끝난 대만 총통 선거 결과를 언급했다. 이어 "정부는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에 기반해 대만과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중국'은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대내외 원칙으로, 한국 정부는 이를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만 문제에 관한 발언 때문에 중국 측이 반발해 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만해협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같은 해 11월 영국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은 북핵 위협과 대만해협 긴장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며 재차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현상 변경 반대'는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국제사회에서는 대만을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인정하겠다는 함의를 갖는다. 당시 중국은 윤 대통령의 대만 언급에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강력 반발했다.

한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의식한 제스처로 풀이된다. 지난해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를 목표로 중국과 교섭을 벌였다. 반면 중국은 "좋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전제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는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한 불만 표시로 해석됐다.

앞서 한국 외교부 역시 대만 총통 선거 직후인 지난달 14일 "우리 정부의 대만 관련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정 대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하나의 중국'을 직접 언급하며 중국에 유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지난해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에 실패한 한국 정부는 새해 들어 '상반기 중 개최'로 목표를 수정했다. 하지만 일본 교도통신은 최근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위한 실제 일정 조율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중국이 한국의 총선 결과를 주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4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패배할 경우 중국은 윤석열 정부가 개최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더욱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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