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후대응기금 재원인 온실가스배출권 수익이 목표치의 21%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기금 손실로 녹색산업 육성 등을 위한 사업비도 깎였는데, 이 같은 상황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정책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5일 한국일보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기획재정부의 ‘2023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배출권 유상할당 경매 수입은 852억 원으로 계획액(4,009억 원)보다 3,157억 원 부족했다. 배출권 수입이 2021년부터 목표에 못 미치면서 기금은 3년 연속 손실을 봤다. 목표 수입 달성률도 2021년 60%, 2022년 43%, 지난해 21%로 급락세다.
기후대응기금의 자체 수입원인 배출권 수익이 크게 줄어들자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기금 운용계획을 변경했다. 배출권 수입계획을 2,087억 원으로 낮추고, 44개 사업의 불용액을 반납받거나 사업비를 미교부하는 방식으로 1,799억 원의 사업비를 감액했지만 결국 적자를 냈다. 이미 지난해 복권기금 909억 원 등을 끌어다 쓰고도 손실을 면치 못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른 재원을 조달하고 여유 자금을 활용했지만 사업비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배출권 수입 손실은 예상됐던 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배출권 유상할당 경매가 진행된 달에 응찰비율(입찰 수량 대비 응찰 수량) 100%를 채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8월부터 11월까지는 응찰비율이 30%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1만2,900원이던 배출권 낙찰가는 12월 9,500원으로 떨어졌다. 배출권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배출권의 90%를 무상 할당한 터라 수요가 적었던 것이다. 더욱이 경제사정 악화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소 감소해 배출권 입찰이 적었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배출권 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 사업도 파행을 겪어야 했다. 정부가 강조한 녹색산업 육성과 관련된 탄소중립전환선도프로젝트융자지원(산업통상자원부)과 그린창업생태계기반구축(중소벤처기업부) 사업비는 각각 317억 원(21.6%), 90억 원(30.1%)이 감액됐다. 탄소중립과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일자리 충격을 완화하는 사업은 감액폭이 특히 컸다. 정의로운전환 지원센터 구축운영사업(산업부)은 75.0%(12억 원)가 깎였고, 고용노동부의 노동전환지원금(산업일자리전환지원금)도 58.6%(30억8,000만 원)가 줄었다.
온실가스 흡수원을 확대하는 탄소중립도시숲조성(산림청) 사업비도 286억 원(17.7%)이 감액돼 사업을 위탁받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뒤늦게 사업비를 반납하기도 했다. 전북 지자체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기금수입 부족이 예상돼 사업비가 조정될 수 있다며 공사 낙찰잔액 등을 남겨두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결국 교부된 사업비의 약 10%를 반납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 현행 배출권거래제가 유지되는 2025년까지는 배출권 가격이 상승할 요인이 많지 않아서다. 정부도 올해 배출권 수입계획을 지난해보다 1,112억 원 줄어든 2,897억 원으로 잡았다. 기금 전체 규모도 지난해(2조4,867억 원)보다 949억 원이 깎인 2조3,918억 원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2026~2030)에 배출권 유상할당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나 확대 폭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배출권 연계 상장지수증권(ETN) 등 제3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금융상품 출시를 허용하고 배출권 이월을 제한하는 등 시장상황 개선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혜영 의원은 "부실한 배출권거래제가 기후위기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유상할당 확대 등 정상화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