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초점] '고려 거란 전쟁', 역사 왜곡으로 봐야 할까

입력
2024.02.07 14:20
'고려 거란 전쟁', 역사 '왜곡' 비판 속출
배우까지 나서 해명 "재창조한 드라마로 봐 달라"

'고려 거란 전쟁'의 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원작 작가와 대본 작가 간의 진실공방에 역사 드라마에게는 치명적인 왜곡 꼬리표까지 붙었다. 역사 드라마 왜곡 논란은 과거에도 꾸준히 불거졌던 문제다. 창작자의 영역인 각색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최근 KBS2 '고려 거란 전쟁'에 적신호가 켜졌다. 역사 왜곡 논란과 원작자의 주장이 얽히고설키면서 끝내 제작진은 '1주 결방'이라는 강수를 뒀다. 편성표에 따르면 오는 10일 '고려 거란 전쟁'은 결방되며 11일에는 스페셜 방송으로 꾸며진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고려 거란 전쟁'의 최근 방송분인 24회는 10%를 기록했다. 이는 20회 이후 4회 만에 다시 10%로 올라선 수치다.

지난 '2020년 전우성 감독은 현종을 주인공으로 한 거란과의 10년 전쟁을 드라마화하겠다는 간략한 기획안을 작성했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전 감독은 자료를 검색하던 중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하게 됐다.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이후 전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씬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소설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 같은 해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것이 1회부터 지금까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된 연유다. 전 감독은 드라마 자문 경험이 있는 조경란 박사를 중심으로 자문팀을 새로이 꾸렸다. '고려 거란 전쟁' 측은 "역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들이 조선시대보다 현저히 적은 고려 시대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요 사건들의 틈새를 이어줄 이야기가 필요했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창작물이기에 제작진은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고려 거란 전쟁'만의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다"라고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방영 후 원작 소설 '고려거란전기'의 길승수 작가의 지적이 나오면서 부정적인 이슈가 불거졌다. 앞서 방영된 17, 18회 방송에서 현종(김동준)은 강감찬(최수종)과 대립하던 도중 눈물을 흘렸고 말을 몰던 도중 수레와 부딪혀 낙마했다. 이후 시청자들은 현종의 묘사에 대해서 역사와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길 작가 또한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 평가할 수 있는 현종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던졌다.

드라마에서 현종을 지나치게 '캐릭터화'를 시켰다는 지적이 일면서 제작진은 '고려 거란 전쟁'은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만든 100% 역사 고증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증을 토대로 재창조해서 드라마로 만들어 가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해명에 나섰다.

출연 중인 배우 김혁도 SNS를 통해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배우들도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연기하기가 마음이 무겁다. 1회부터 드라마 시작 전에 양해 멘트를 알리고 시작하는데, 이런 문구가 왜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길 바란다"라고 호소에 나섰다.

이는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종종 부딪히는 딜레마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 역사의 일부분 각색을 왜곡으로 보는 시선이 더욱 늘었다. '조선구마사'라는 전례 없는 흑역사가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최수웅 교수는 본지에 "과거와 역사 드라마, 영화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80, 90년대 초반에도 역사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와 역사를 조합했다. 어떤 식으로 허구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90년대 이후 '팩션' 개념이 등장했다. 영화 '왕의 남자', 드라마 '대장금'도 역사 속 두 줄을 상상력으로 만들었다. 이후 역사 콘텐츠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이 생긴 것이다. 상상력이 발전되면서 범주가 굉장히 늘어나게 됐다. 늘어난 만큼 논란이 당연히 발생하게 됐다. 서사라는 것은 픽션이다. 사실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고 짚었다.

이어 "창작자가 잘못 해석한다면 작품 밖의 피해가 나타날 수도 있다. 작품의 논리 안에서는 허구지만 작품 바깥에서 윤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작품 그 자체로 인정되지만 파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균형의 필요성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최수웅 교수는 "책임을 너무 강조하면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시킨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 쪽에서는 사회나 제도 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규제를 하지 않는다"라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의 구절에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나온다. 이를 두고 최 교수는 "모든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게 열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과거와 비교했을 때 줄어든 드라마 호흡 속 모든 캐릭터들의 입체적 서사를 보여줄 수 없다는 점 역시 '고려 거란 전쟁'을 보다 열린 눈으로 봐야 하는 이유로 들었다. 최수웅 교수는 "분량이 적으면 인물의 여러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짧은 호흡으로는 압축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부분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면모를 부각시킬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감찬이다. 조연들은 일정 부분 입체성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창작자의 관점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콘텐츠에 지나친 잣대는 결국 산업 자체를 위축시킬 뿐이다.

우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