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남성들만의 마약 세계…‘마약 대모’는 피눈물로 맞섰다

입력
2024.02.03 11:30
15면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셀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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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모국 콜럼비아를 떠난다. 세 아들을 데리고서다. 행선지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오랜 친구가 살고 있다. 방 한 칸을 신세 진다. 친구가 일자리까지 준다. 하지만 오랫동안 친구 집에 머물 수는 없다. 콜럼비아에서 급히 챙겨 온 마약 1㎏으로 새 삶을 모색한다. 판로를 필사적으로 찾으나 뒷골목은 정글이나 다름없다. 1978년 당시 마이애미 마약 시장을 장악한 남성들은 피도 눈물도 없다. 중년여인 그리셀다 블랑코(소피아 베르가라)는 과연 어린 아들들을 건사하며 낯선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①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라

그리셀다의 ‘사업‘은 신통치 않다. 물량만 확보하면 판매가 가능하다고 처음엔 생각했다. 기존 사업자들은 새 경쟁자를 원치 않는다. 그리셀다의 시장 진입을 원천봉쇄한다. 마약은 쌓여가고 팔 수는 없는 상황에서 그리셀다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돈 많은 상류층은 사회적 위상 때문에 거리에서 마약을 사지 않는다는 것, 그들 또한 진탕 놀고 싶은 욕망이 누구보다 강하다는 점을 주목한다. 상류층을 초청해 파티를 열고 마약을 뿌린다.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사업은 빠르게 번창한다. 경쟁자들이 그리셀다의 성장을 두고만 볼 리 없다. 그리셀다의 판매책들을 잇달아 공격한다. 그리셀다는 위기에 봉착한다. 거액을 받고 사업을 넘기라는 제안을 받기까지 한다.

②사업 성공의 비결은 무자비함?

그리셀다는 쉽게 물러나고 싶지 않다. 남자들이 만든 게임의 법칙에 굴복하지 않으려 한다. 돌파구를 찾는다. 폭력과 무자비가 유일한 답이라는 걸 깨닫는다. 쿠바 난민들을 규합해 반격에 나선다. 자신이 아끼던 이의 죽음을 겪으며 더욱 잔혹해진다. 그는 마이애미 마약 시장을 장악해 간다.

마약 위에 지은 제국은 위태롭다. 비정함으로 사업을 키운 그리셀다는 측근조차 믿지 못한다. 돈은 넘쳐나나 그의 내면은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물질적 자립과 풍요만을 생각했던 그리셀다의 몰락은 예정돼 있다.

③여성 범죄자,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

악명 높았던 마약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사람‘ 그리셀다를 화면 중심에 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범죄자만 여성이 아니다. 그리셀다의 악행을 쫓는 수사관 준(훌리아나 마르티네즈)도 여성이다.

준은 여성 마약상이 있을 리 없다는 남성 수사관들의 편견을 헤치고 수사에 매달린다. 드라마는 그리셀다가 비열한 남자들에 맞서 마약 대모가 되는 과정을 경찰 조직 내 준의 분투와 대치시킨다. 그리셀다와 준은 범죄자와 경찰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으나 남성들이 만든 질서를 흔들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뷰+포인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미국 사회가 마약에 찌들어 가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압제를 피해 쿠바인들이 대거 마이애미로 향했던 모습은 고전영화 ‘스카페이스‘(1984)를 떠올리게 한다. 히스패닉계 주인공이 마약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하려다 파멸해 가는 모습이 닮은꼴이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나르코스’ 시리즈의 여성판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셀다가 생계가 급한 엄마에서 마약조직을 이끄는 대모로 거듭나는 과정을 표현해낸 베르가라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8%, 시청자 77%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