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3.5만원 5일후 돌려줘도 과태료... 김 여사 '가방 반환' 시점이 중요

입력
2024.02.01 04:30
청탁금지법 기준은 ①지체없는 ②자발적 반납
김 여사 아직 가방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보여
대통령 선물로 볼 여지 있으나 가능성은 낮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의혹'이 불거진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대통령실이 가방 수령과 신고 및 보관 경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획탐사보도 매체 '서울의소리'가 유튜브를 통해 이 의혹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11월 27일. 영상에는 2022년 9월 13일 최재영 목사가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김 여사에게 디올 가방을 건네는 장면이 담겼다. 영상 속 김 여사는 "이걸 자꾸 왜 사 오세요"라거나 "이런 거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가방을 돌려주는 장면은 나와있지 않았다.

관련법 전문가들은 '받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 사건의 쟁점은 △김 여사가 현장에서 돌려주려 했는지 △나중에라도 즉시 반환하려 했는지 △돌려주지 않았다면 정확히 언제 신고를 했는지 등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통령실이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가 문제가 되었던 유사 사건과의 비교를 통해 사건의 성격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는 '반환 시점'이 문제가 됐던 청탁금지법 사례들을 통해, 법원이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살펴봤다.

① '지체 없이' 반납했나

청탁금지법 제8조 4항은 공직자 또는 배우자가 금품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경우 소속기관장에게 '지체 없이' 신고하고, 이를 반환·인도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히도록 규정한다. 여기서 '지체 없이'는 다소 불명확한 설명으로도 보이지만, 법원은 단 며칠이 지나도 '지체'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위원회의 청탁금지법 주요 결정례집에 따르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의 범주에 들어가는 공공기관 직원 A씨는 2017년 횟집에서 직무 관련자와 만나 합계 7만 원 상당의 식사를 했다. 당시 A씨는 상대방이 개인카드로 음식값을 내자 "각자 본인 음식 값을 내자"고 반환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결제를 즉시 취소하지는 않고, 5일 뒤 모바일 뱅킹으로 3만5,000원을 보냈다.

현장에서 반환 의사를 비췄고 며칠 안에 돈을 돌려줬음에도, 법원은 '지체 없이' 반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7만 원을 부과했다. 5일 동안 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최용문 변호사는 "지체 없이 반환했는지 여부는 통상 재판부 해석에 따라 결정되는데, 여기서 반환 기간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가 수령한 가방의 경우 관련자 진술이나 대통령실의 제한적 설명 등에 따르면 아직 반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방을 준 최재영 목사는 3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실로부터 지금까지 가방 반환과 관련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제의 가방은 '반환 예정 품목'으로 분류돼 대통령실 창고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② '자발적으로' 반납했나

받은 금품을 '자발적으로' 반환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노동청에서 산업재해 예방 지도 업무를 맡던 공직자 B씨는 2017년 한 회사 대표로부터 38만9,000원 상당의 통기타를 받았다. 그는 "중고 기타를 빌려가라고 강권해 빌린 것"이라며 "살펴보니 기타가 새 것이었고, 칠 줄도 몰라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B씨의 주장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감사관실의 감찰이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채고, 통기타를 받은 지 이틀 뒤 회사 대표에게 전화해 반환한 것이다. 법원은 "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처벌을 피하거나 축소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즉시 반환이 이뤄진 것으로도 보기 힘들다"고 봤다. B씨에겐 통기타 값의 약 3배인 과태료 133만3,800원이 부과됐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대학 교수 C씨는 자녀 결혼식 축의금 명목으로 졸업생과 강사 등 6명에게 법정한도 10만 원을 초과해 각각 20만 원의 축의금을 받았다. C씨는 대학 경영평가실로부터 위반행위 신고가 접수됐다는 지적을 받고, 결혼식 2주 뒤 초과 금액을 반환했다. C씨는 "개인별 금액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일이 소요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2주라는 기간은 '지체 없는 반환'이 아닌 데다, 자발적인 것도 아니라 보고 과태료 360만 원을 부과했다.

이 '자발적 반환'을 김 여사 사건에 대입해 보면, 이미 언론 보도로 김 여사의 가방 수령 사실이 알려진 상황이고 정치권의 비판이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사후 반환을 하더라도 자발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창민 변호사는 "바로 반납하지 못하더라도 소속 기관에 즉시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언론이나 외부 정황에 따라 비위 사실이 드러난 뒤 신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짚었다. 김 여사가 대통령실에 신고한 시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③국고 귀속 주장은 맞나

물론 김 여사가 받은 가방을 청탁금지법 규제를 받는 '금품'이 아니라 대통령 배우자를 위한 '선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에서 대통령 선물은 '대통령 직무수행과 관련해 국민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는 선물'에 한정한다. 과거 정부에선 요건에 맞지 않는 선물이 들어오면 반환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명품 가방이 '대통령 직무와 관련한 선물'이 될 수 있느냐는 점. 일각에선 현재 대통령실이 언급을 꺼리는 것은 내부적으로 '대통령 선물'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는 데다, 지금 상황에서 반환을 하면 사실상 청탁금지법 위반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란 의견도 나온다. 이창민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법 적용도 안되는데, 일련의 절차로 반환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지체 없이 반환하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청탁금지법 위반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영부인을 고위공직자로 명문화해 형사상 소추 원칙을 적용하고, 청탁금지법 주체로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해당 사건과 관련해 입장 표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