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인물이 연상되는가. 올바르고 어긋남이 없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어딘가 답답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인물일 수도 있겠다. 국정교과서 세대에게 학창시절 교과서는 모범이자 기준이었다.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하는 지금 어린이들은 ‘교과서 같은 사람’이란 말뜻을 잘 모른단다. 교과서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교육이 어떻게 성장했고 달라졌는지, 그리고 남겨진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미술교과서 ‘도화임본(圖畵臨本)’은 1907년에 출간됐다. ‘2022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라 오는 2월 15종의 미술교과서가 새로 출간된다. 117년이 지나는 동안 미술 교육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지 130년이 됐다. 1895년 대한제국은 '국민소학독본(국어)'을 제작하며 국민 교육을 준비했지만 을사늑약 이후 일본이 개입을 시작했다. 일본은 1872년부터 공교육을 개시했고 곧바로 일본미술대학을 설립하며 빠르게 서구의 미술 교육을 흡수했다.
당시 일본 미술교과서 ‘세이카신난(西画指南)’은 영국 드로잉책을 번역한 것인데,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1746~1827)의 미술 교육 이론을 적용한 책이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선을 긋는 감각을 통해 아동의 이성이 계발된다는 페스탈로치의 이론은 ‘표현 중심의 미술 교육’의 출발점이다.
19세기 유럽 미술 교육 이론을 적용한 일본 미술교과서를 조선의 사물과 인물로 바꿔 그려 넣은 것이 한국 최초의 미술교과서 ‘도화임본’이다. ‘도화임본’에는 ‘미감(美感)’이 언급돼 있는데, 취향 계발을 중시했던 존 러스킨(1819~1900)의 감상 중심의 미술 교육의 영향이 추가됐다.
20세기 초까지 공교육의 미술 교육은 단순한 ‘따라 그리기’에 불과했다. 대신 전통적 도제 교육을 흡수한 미술 교육기관들이 등장했다. 최초의 현대적 예술종합학교였던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1919~1933) 출신들이 전 세계에 흩어지면서 미술 교육 이론과 미대 설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는 예술 교육이 예산 삭감 대상이 되자 미술 교육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들이 시작됐다. 예술을 통한 교육을 주장한 교육자 허버트 리드를 중심으로 ‘실용 중심의 미술 교육’이 태동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교육 분야를 아울러 대한민국을 설계했다. 미술 교과는 철학자 존 듀이의 민주주의 및 진보주의 교육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창의 중심의 미술 교육을 수용했는데, 이는 교사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 교육철학이다. 동시에 한국 예술계도 분주했다. 예술인협회가 늘어났고 1945년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서울대, 조선대, 홍익대에 미대가 세워졌다.
1948년 대한민국의 첫 국정교과서가 제작됐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는 철수, 영이, 바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당시 미국 교과서 속 인물 딕과 제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영희'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영이'다. '영희'는 일본식 이름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영이'로 수록한 것인데 현재까지도 '영희'로 잘못 알려졌다.
최초의 흑백본 ‘바둑이와 철수’ 교과서 속 삽화는 ‘한국의 로트레크’라 불리는 구본웅(1906~1953)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미군정청 문교부에서 미술 과목 편수사로 근무한 구본웅에 대해 "미술교과서를 편찬하고 아울러 국정교과서의 삽화를 그려야만 했다"는 한 회고록 속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철수와 영이’ 캐릭터는 여러 화가의 손을 거쳤다. 1975년 12월 11일 자 중앙일보 기사에는 "교과서 삽화 '바둑이와 철수'의 화가, 권순일 화백"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1957년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권순일은 1960년대부터 문교부 편수과에서 근무했고 1972년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교과서 속 철수와 영이는 주로 김태형(1916~1993) 화백이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미술 교사였던 김태형은 1948년부터 국정교과서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며 30년 동안 많은 교과서 그림을 남겼다.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철수와 영이의 모습은 대부분 그의 그림이다. 저작권 인식이 부족했던 교과서 삽화의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본격적인 교육과정의 수립과 시행은 1954년부터였다. 1947년 출생자부터 초등교육 의무교육이 시작됐고, 1989년 출생자부터 중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됐다. 현재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에 가까운 무상교육이다. 1997년까지 총 7차례의 전면적 교육과정 개정이 있었고 2007년부터는 부분적 개정을 한다는 의미에서 연도별 개정 교육과정이라 부른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올해부터는 또 달라진다. 1954년부터 2024년까지 70년 동안 한국 공교육은 국제적, 정치사회적 변화에 맞춰 변화했다. 그 과정은 몇 줄로 요약하기 불가능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기에 변하지 않는 틀이 있어야겠지만, 2000년 이후 우리 삶의 변화 속도는 제도와 학문이 쫓아가기 힘들 만큼 빠르다. 교육 문제가 어렵고 복잡한 이유다.
교과서의 변천 과정은 지난 70년간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교과서는 국정, 검정, 인정 3가지 유형이 있는데,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실시 무렵부터 국정교과서 비중이 줄고 검인정 교과서가 확대됐다. 현재는 초등1, 2학년 일부 과목을 제외한 모든 교과서가 검인정 및 자유발행제다. 다양성 확보는 전 세계적 추세다.
최초의 미술교과서는 국정이었으나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검인정으로 발행되고 있다. 1952년의 초등 미술교과서에는 총 든 군인들이 그려졌고, 1960~1970년대에는 반공 포스터와 석고상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민족 자긍심을 위해 발굴 유물을 표지로 하는 미술교과서가 많았다. 세계화란 단어를 유행시킨 김영삼 정권 때는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이 표지로 등장하는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디자인의 비중이 늘었고 미술사도 풍성해졌다.
미술 교육은 공교육 과정이 바뀔 때마다 함께 움직였다. 예술 현장의 추세에도 민감했다. 미술 교육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공교육 과목으로서의 미술인 ‘미술을 통한 교육’이고, 또 하나는 예술인 양성을 위한 ‘미술을 위한 교육’이다. 두 방향이 서로 충돌하고 보완하며 성장했다.
공교육의 미술 교육은 교육 이론과 현대 미술 이론의 변화를 따랐고, 미대 교육은 예술산업과 예술시장의 변화를 쫓아야 했다. 이 차이는 다시 미술 교육의 새로운 고민으로 이어진다. 세계적인 체육인, 음악가, 미술가의 육성은 공교육의 몫인가 아니면 사교육의 영역인가. 미술 교육 설계의 주체는 교육학자인가 미술학자인가.
‘미술을 통한 교육’은 개인의 전인격적 성장이 초점이다. 앞서 언급한 20세기 초의 '표현, 감상, 실용, 창의' 중심의 미술 교육론은 냉전시대를 거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학문 중심의 미술 교육론으로 변모했다. 미술활동, 미술감상, 미술사, 미술비평 4가지 영역이 강조됐다. 여기에 현대 예술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추가되면서 점차 다문화, 인권, 환경 등 문화적 요소와 융합되고 있다.
현재는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21세기 미래형 미술 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미술 교육을 문화예술교육으로 바꿔 부르는 추세다. 사범대학과 미대 출신들이 임용고시, 교직이수, 교원양성과정 등을 통해 미술 교사가 되는데, 최근 비전공자도 미술 교과를 가르칠 수 있도록 요건이 바뀌고 있어 논란이 진행 중이다.
‘미술을 위한 교육’은 전문가 양성이 초점이다. 미대에 가지 않아도 미술가가 되는 사람이 많고 미대를 졸업해도 미술과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이 늘었다. 미대의 교육이 문제일 수도 있고 공교육을 거치며 받은 미술 교육 덕분일 수도 있다. 순수 미술과 응용 미술의 구분에 대한 고민도 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대 학생’이라 하면 흔히 화가나 조각가를 꿈꾼다고 여겼으나 현재 전체 미대 학생의 약 70%가 디자인, 미디어, 애니메이션 등의 응용 미술 전공으로, 순수 미술 분야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대중의 고정관념은 사회의 변화 속도보다 느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직도 '그림 잘 그리는 아이'가 미대에 가고 예술가도 된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미대 입시 선발 기준이 바뀌며 그림 실력으로 미대에 가는 시대가 아니게 된 지 오래다. 미대를 졸업해도 미술 현장으로 진출하기도 쉽지 않다.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후 학생과 학부모들은 한국의 교육과정과 미대를 탓한다. 이는 미술 교육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다. 미술교과서는 개인의 전인격적 성장을 위한 표현, 감상, 실용, 창의를 배우는 ‘열린 텍스트’다. 애초에 모범 답안이 없는 텍스트이며 앞으로도 정답이 없는 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대적 미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교과서 같은 사람’보다는 ‘교과서 같지 않은 사람’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적합하다. 과거 국정교과서 속 철수와 영이는 오늘날 무수히 많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교육학자와 예술학자들이 시대에 맞는 미술 교육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