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는 세상의 미래를 짚어보고자 하는 행사들이 많이 벌어진다. 몇 주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가 그랬고, 지난주 스위스 다보스포럼이 그랬다. 올해 다보스포럼은 '신뢰 재건(Rebuilding Trust)'의 테마 아래 다양한 논의가 있었는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사회혁신을 위한 다국적기업들의 글로벌 약속인 '모두 일어나라'는 뜻의 '라이즈 서약(RISE ahead Pledge)'이었다.
복잡다기화되는 사회에서 신뢰가 깨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혁신이 필요하고, 이런 생태계에 누가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글로벌 기업계가 한목소리로 임팩트 생태계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라이즈 서약의 요체였다. 라이즈는 영어로 '일어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약자로서도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고 있다. '사회혁신 생태계에 기업의 투자를 북돋운다'(Rallying Private Investment to Social Economy)라는 의미이니 말이다.
필자가 더 중요하게 느낀 것은 이런 논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이런 약속이 한날한시에 몇몇 선각자들이 모여서 의기투합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대 들어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이를 반영해 2023년 4월 유엔은 '사회혁신과 연대를 통한 SDG목표실천'을 주제로 하는 새 결의안(Resolution)을 발표하게 된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다보스포럼은 같은 해 9월 공식적 지지 서한을 발표하게 된다. 국제기구와 정부 등 공공부문의 참여에 더해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 역할(Corporate Engagement)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유엔의 선도적 역할 발표, 그에 이은 글로벌 기업계의 적극적 참여 선언과 같은 집합적 노력이 있었고, 그런 노력이 지난주 다보스포럼 2024에서 '라이즈 서약'의 형태로 탄생한 것이다.
이 서약은 그냥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보스포럼의 해당 세션에서는 포럼 측과 딜로이트가 공동연구한 결과물인 '기업의 사회혁신 나침반(Corporate Social Innovation Compass)' 보고서가 발표됐다. 미리 컨설팅 기관과의 협업으로 글로벌 유명 기업의 사회혁신 파트너십 사례를 분석·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버라이존, 유니레버, SAP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이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사례로 SK그룹의 사회성과인센티브(SPC) 프로그램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직까지 이 서약에 수많은 기업이 동참한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초청그룹으로 포함된 기업과 기업재단은 대략 13개 기업·기업재단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바이엘, 이케아, 사노피, SAP, EY 등이며, 여기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적가치연구원도 초청되는 영예를 누리게 됐다. 이 서약은 발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기업의 참여를 독려할 것이며, 올 한 해 동안 2개의 주제에 대해 중점적인 논의를 할 계획이다. 사회혁신을 위한 '비례보상제도'와 '인공지능(AI)의 활용'이 그것으로, 많은 전문가의 혜안과 지혜가 필요한 분야다. 바야흐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보다 나은 사회 재건의 기치 아래 '사회혁신'의 날갯짓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즐겁게 목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