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뽀순이는 나한테는 손주나 다름없어요. 병원에서는 안락사시키라고 하는데 키우던 애를 그렇게 보낼 순 없었어요. 혼자 있으면 대화할 사람도 없는데, 그동안 뽀순이가 기쁨을 많이 줬어요."
서울 노원구에서 홀로 사는 배미숙(76) 할머니는 지난해 가을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 '뽀순이(9)'가 침대에서 떨어진 뒤 걷지 못하게 되면서 애간장이 다 탔다. 두 뒷다리가 마비 증세를 보인 이후 곧바로 병원에 데려갔지만 검사비만 수백만 원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상태가 좋아지길 바랐지만 뽀순이는 배밀이로만 이동할 수 있었고 소변을 계속 흘리더니 최근에는 혈뇨 증상까지 보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회복지사가 뽀순이 사례를 서울시의 취약계층 반려동물 복지 지원 사업으로 신청했고, 두 번의 지원 끝에 뽀순이는 치료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됐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취약계층의 중증 질환 반려동물 치료를 돕는 동물병원이 있어 가능했다.
이달 18일 배 할머니와 서울 송파구 24시송파샤인동물메디컬센터를 찾았다. 검진 결과 요추 신경이 이미 손상돼 뽀순이의 두 다리는 회복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뽀순이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은 들을 수 있었다. 윤용석 수의사는 "보행은 이제 휠체어를 통해 가능하다"며 "요독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방광을 압박해 배뇨를 시키고 피부에 소변이 묻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배 할머니는 "뽀순이 다리를 살릴 순 없었지만 이유라도 알게 돼 너무 감사하다"며 "뽀순이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2. 서울 중랑구에서 홀로 사는 임백규(65)씨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반려견 다섯 마리를 입양해 기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임씨는 유기동물 이동 및 구조 봉사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임씨는 지난해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사이 반려견을 맡아줄 사람을 찾던 중 서울시가 운영하는 '우리동네 펫 위탁소'를 알게 됐다. 취약계층이 입원 등으로 부재 시 최대 20일간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제도다. 임씨는 입원 기간 이외에 추석 명절 때에도 반려견을 이곳에 맡기고 고향에 다녀왔다.
임씨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노인들은 반려동물 때문에 입원도 못하고, 고향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시에서 지원해주니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고 만족해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9년부터 사회적 약자의 반려동물 돌봄 지원 사업을 시작해 매년 그 대상을 확대해오고 있다. 먼저 반려동물을 기르는 취약계층에 가장 필요한 건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이다. 이를 위해 ‘우리동네 동물병원’ 프로그램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등을 대상으로 최대 40만 원까지 검진, 치료, 중성화 수술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5개구 92개 병원을 통해 총 1,864마리가 지원을 받았다.
이외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려견 장례대행 서비스 이용 시 이동 지원을 돕고 있다. 우리동네 펫 위탁소의 경우 지난해에만 215마리가 이용했다.
윤민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 동물보호과 동물정책팀 주무관은 "사회적 약자에게 반려동물은 단 하나뿐인 가족일 수 있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며 신체적 활동을 하게 하는 소중한 존재"라며 "다만 양육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활비를 줄이고 타인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 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자체별로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돌봄 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시나 구, 자원봉사자들 간 정보 공유를 통해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원구와 취약계층 반려동물 돌봄 사업을 시행한 바 있는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반려동물을 잘 돌보기 어려운 분들이 신중하게 반려동물을 맞이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뽀순이 사례처럼 이미 보호자와 반려동물 간 유대가 형성된 경우라면 사람과 동물 모두를 위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