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보도와 알권리의 오용

입력
2024.01.26 15:0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부가 정보를 차단하고 비닉(祕匿)하면서 주권자인 국민이 중요한 정보를 알지 못해 국가의 운명이 뒤바뀌었다는 반성들이 나왔다. ‘알권리’가 등장한 배경이다. 미국 법학자 헤럴드 크로스가 개념을 구체화했고, AP통신 사장 켄트 쿠퍼가 널리 알렸다. 독일은 기본법에 ‘알권리’를 명문화하며 나치시대의 언론통제에 대한 후회을 반영했다.

□ 얼마 전,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고 이선균 배우의 사생활 녹음 파일을 공개한 KBS에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를 보도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며 질타했다. KBS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다각적인 취재와 검증 과정을 거쳤다”며 기사 삭제 요구를 거부했다. 경찰은 디스패치를 압수수색하고, 수사 정보 유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보도 내용이 더 문제가 된 경기신문, KBS, JTBC는 포함이 안 된 상태라, 얼마나 진정성 있는 수사가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 이선균씨 사건과는 다른 성격의 제보자 색출 수사도 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을 외부에 알린 직원의 민원 정보 유출 혐의에 대해 경찰이 방심위를 압수수색하고 강제수사에 나섰다. 민원인 정보 유출은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하나, 류 위원장의 가족이 청부민원을 했다는 ‘비위’ 의혹을 그의 ‘가족’이라는 민원인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어떻게 공론화할 수 있단 말인가.

□ 세상은 ‘폭로하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의 싸움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기준은 ‘공익’이면 된다. 이선균씨가 누구와 사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보도하는 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얄팍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당사자와 가족을 괴롭히는 효과 외엔 없다. 이익을 얻는 이는 ‘조회수’ 장사를 하는 언론사뿐이다. 반대로 ‘청부민원’ 폭로는 권력의 비위를 드러내 결과적으로 사회 자정 기능으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있다.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르는 척하는 이들만 있을 뿐.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