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공연 눈물바다 만든 익명의 '호박고구마', 배우 나문희였다

입력
2024.01.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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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공연서 '일산 사는 호박고구마'로 사연 보내
"남편 사별 후 임영웅 노래로 위로"
표는 초대권 아닌 영화 '소풍' 감독이 따로 구해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먼저 하늘로 떠났어요." 가수 임영웅은 21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연 공연에서 이런 내용이 적힌 관객 사연을 읽었다. 공연에서 팬들의 사연을 읽어 주는 '임영웅의 스페이스' 코너였다.

임영웅의 손에 들린 종이엔 "82살인데 아직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남편이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넘어져 이마를 다쳤다고 하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홀로 남은 아내가 먼저 떠나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었다.

애틋한 사부곡에 일부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사연자는 사별의 슬픔을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면서 극복하고 있다고 했다. 사연을 보낸 관객 이름은 '일산에 사는 호박고구마'. 23일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사연을 보낸 주인공은 배우 나문희다. 호박고구마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서 나문희가 며느리(박해미)와 싸우다 "호박고구마"라고 소리를 질러 화제를 모은 대사로 방송 후 숱한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을 쏟아냈다. 나문희는 지난해 12월 남편상을 당했다.

나문희는 영화 '소풍'에 함께 출연한 김영옥을 비롯해 김용균 감독과 함께 이날 공연장을 찾았다. 사연의 주인공이 나문희라는 걸 임영웅도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사연을 읽은 뒤 임영웅은 "어머니~"라고 사연의 주인공을 무대에서 두리번두리번하며 찾았다. 객석에서 "나문희" "나문희"라는 말을 뒤늦게 들은 임영웅은 "진짜요?"라고 되레 놀랐다. 그 후 공연장 스크린엔 객석에서 임영웅을 바라보고 있는 나문희와 김영옥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떴다. 두 배우는 임영웅 팬덤의 상징색인 하늘색으로 된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객석에서 환호가 터지자 나문희는 양팔을 머리에 올려 하트를 만들어 화답했다. 깜짝 놀란 임영웅은 "제 노래로 위로받고 계시다니 마음이 뿌듯하고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나문희는 '소풍'을 연출한 김 감독이 표를 구해 준 덕분에 임영웅의 공연을 관람했다. 임영웅 측에서 따로 초대권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임영웅 소속사는 공연 초대권을 뿌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나문희는 임영웅과 '소풍'으로 인연을 맺었다. 임영웅의 노래 '모래알갱이'가 영화 O.S.T.로 쓰인 게 계기가 됐다. 나문희는 "딱 우리 이야기 같다. 가사가 너무 좋다"며 이 곡을 반겼다. 내달 7일 개봉하는 '소풍'은 친구이자 사돈인 노년의 두 여성이 60여 년 만에 고향 남해로 우정 여행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임영웅은 곡의 영화 음악 사용료를 부산 연탄은행에 기부할 예정이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