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라는 말이 있다. 무시당하거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주로 쓴다. 그런데 혈당 급상승을 예방하려면 찬밥이 더운밥보다 좋다.
쌀에는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돼 있어 오랫동안 ‘비만의 주범’으로 꼽혔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지방으로 바뀌어 복부 비만을 일으키고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찬밥을 먹으면 혈당 급상승을 예방하는 데 도움 된다고 한다. 국제 학술지 ‘영양 및 당뇨병(Nutrition & Diabetes·2019년)’에 따르면, 폴란드 포즈난대 의대 연구팀은 32명의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46g의 같은 양의 쌀밥을 지어 한 집단은 갓 지은 밥을, 다른 집단은 24시간 동안 식힌 뒤 다시 데운 밥을 먹게 했다.
식힌 뒤 다시 데운 밥을 먹은 집단은 갓 지은 밥을 먹은 집단보다 혈당이 전반적으로 덜 높아졌고 혈당도 안정적이었다.
연구팀은 식힌 탄수화물이 ‘저항성 전분(resistance starch)’ 덕분에 혈당 조절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포도당으로만 구성된 일반 전분(녹말)을 많이 먹으면 체내에 지방이 축적된다. 하지만 저항성 전분을 먹으면 지방 분해가 오히려 촉진된다. 저항성 전분에는 식이섬유가 최대 90%까지 포함돼 있어 아밀라아제가 포도당을 분해하지 못해 체내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다.
대신 대장에서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돼 짧은 사슬 지방산으로 바뀌어 식이섬유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일반 전분의 열량이 1g당 4㎉인 것보다 저항성 전분은 1g당 2㎉다.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도 전분보다 저항성 전분이 많은 것을 섭취하면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혈당을 낮출 수 있다.
저항성 전분은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장에서 식이섬유와 비슷한 역할을 해 장을 건강하게 만들고 비만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식품과학과 기술 트렌드’ 저널과 미국 콜로라도대 암센터가 발표한 논문에서도 저항성 전분이 대장 점막 세포를 건강하게 하고 암세포 분열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비만을 막아 유방암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저항성 전분은 일반 전분보다 포만감도 오래가기에 과식을 막는 데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밥을 빨리 식히고 싶어 냉동 보관하면 효과가 없다. 온도가 내려갈 때 전분 분자들이 움직여 뭉쳐져야 저항성 전분이 만들어지는데, 냉동하면 전분의 구조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밥을 식힐 때는 실온보다 냉장 보관해야 저항성 전분으로 전환이 더 잘 된다. ‘아시아태평양 임상 영양학 저널’에 실린 논문(2015년)에 따르면, 4도에서 25시간 식혔다가 재가열한 백미는 10시간 실온에서 식힌 백미보다 저항성 전분 함량이 20% 더 많았다.
감자도 쌀밥처럼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식힌 뒤 다시 데워 먹으면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아진다. 바나나에도 저항성 전분이 적지 않게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