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의혹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가 사흘(5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활동에 족쇄가 된 사법 리스크를 이번에는 털어낼 수 있을까. 삼성은 물론 재계가 이번 판결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이번 재판 결과가 삼성의 앞길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는 시각은 재계 관계자, 경제‧경영 전문가들 사이에서 엇갈린다. 1일 재계 관계자는 "국정 농단 재판의 관건이 이 회장의 실형 유무였다면 이번 재판의 관건은 무죄 선고 여부"라고 말했다.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상징되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합법임을 입증할 수 있어서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직접 100회 넘게 재판에 출석하며 성실하게 임했던 건 실형을 면하는 수준이 아니라 무죄를 받아야 할 만큼 절박해서"라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 삼성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차지하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13년 만에 미국 애플에게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매출 대신 출하량으로 세계 시장서 존재감을 유지하던 삼성전자로서는 충격적 상황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나빠져 미국 인텔에게 반도체 매출 선두 자리도 내줬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현재 삼성전자를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이자 대한민국 경제를 끌고 가는 존재들이다.
1심 선고일이 가까워지자 재계에서는 '무죄가 선고된다면' 달라질 삼성의 각종 시나리오가 나온다. 먼저 이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다. 그는 2016년 10월 임시 주총에서 사내 이사로 선임됐지만 국정 농단 사태 연루 등으로 4년 임기를 마치고 2019년 등기 이사에서 물러난 뒤 미등기 이사다. 기업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대부분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이 회장은 '공식적으로'는 경영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사회 참여 권한이 없어 경영과 관련된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1심 선고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 여부가 정해질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자동차 내 전자장치(전장·電裝) 자회사 '하만' 인수 후 8년째 멈춘 대형 인수합병(M&A)에도 시동을 걸 거란 기대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받지 않더라도 유죄 선고를 피하지 못할 경우 삼성에 미칠 파급력이 클 거라고 내다본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정 농단과 이번 재판 결과의 파장은 본질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정 농단 재판 결과는 삼성의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지탄, 이 회장 개인의 경영 공백에 영향을 주는 정도로 끝나지만 이번 판결에서 유죄가 입증되면 그 피해를 입은 삼성 관계사 주주들의 손해 배상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삼성의 국제 신용 등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다만 합병이 10년 전 이뤄졌으니 재판 과정을 지켜본 다른 기업들이 합병, 회계 방식을 삼성처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죄 판결에 더해 실형까지 선고받는다면 또 다시 총수 자리가 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회장의 공백 또는 옥중 경영 자체가 가져올 파장은 크지 않다고 봤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두 차례 총수 공백을 경험했으니 이번 판결에서 실형을 선고받아도 경영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내부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도 "국정 농단 재판 때는 삼성이 판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당황했지만 이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옥중에서 대규모 M&A 같은 중대한 경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형 선고가 삼성의 경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난 달 10일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연 '재벌총수 봐주기 흑역사, 더 이상 안 된다' 좌담회에서 '총수에게 좋은 것이 그 기업에도 좋은가'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0~2018년 우리나라에서 유죄 판결받은 총수가 지배하는 기업과 계열사의 주가를 지켜보니 사법 처리는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뼈대다. 기업 319개사의 재판 전후 15일 동안의 주가 변동을 분석한 결과 오히려 실형을 받은 총수의 기업 및 계열사(141개) 평균 주가수익률(–0.6%~-0.01%)이, 집행유예를 받은 총수의 기업 및 계열사(178개) 주가수익률(–3%~-1.4%)보다 높았다.
'1심에서 이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되면 삼성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본보 질문에 최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국내 형사 재판의 무죄 선고율은 4%"라며 "총수가 기소된 후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가 너무 적어 유의미한 통계를 내지 못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