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시작과 함께 북한의 광기(狂氣)가 시작됐다. 고체연료에 의한 극초음속 중거리미사일(IRBM) 발사 등 군사적 도발과 함께 제1 적대국 선언, 남한 영토 점령, 평정 및 수복 등의 헌법 명기 등을 거론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통일, 화해, 동족, 삼천리 금수강산, 자주, 평화통일 및 민족대단결 등 과거 평양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할 때 단골로 끄집어내었던 감성적 표현과 용어의 삭제를 지시했다.
이들 용어는 북측이 남북 협상에서 남측의 협력을 구하거나 지원을 받고자 할 때마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끄집어내었던 단골 화술이었다. 북한은 대남 적화통일 방침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은 항상 난관이었다. 평양에서 남측 인사를 상대로 합창하던 '반갑습니다'라는 북측 노래는 남측 진보 세력을 회유하는 감성형 통일전선전술이었다. 평양 협상에서는 '민족대단결로 미제를 축출하자'는 요상한 선동도 들어야 했다. 뜬금없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으로 남측을 배제하고 무시했다. 군사용 전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논리로 인민들을 위해 한 해 최대 30만 톤까지 쌀을 지원했다. 햇볕을 강하게 쐬면 외투를 벗을 거라는 동화 같은 이솝우화를 끄집어내며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가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은 여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서 아홉 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됐고 남한 영토의 완정(完整)으로 응답했다.
새해 들어 평양이 남측을 상대로 한 전쟁형 통일전선전술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남북관계의 주도권 회복 전략이다. 서울이 진보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 전환되면 평양은 주도권 상실에 따른 좌절감으로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과 같은 군사도발을 자행했다. 둘째, 투표권은 없지만 남한 총선 및 미국 대선 개입 전략이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논쟁으로 남남 갈라치기를 유도하고 미국과 강대강 구도를 형성해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유리한 국제정세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셋째, 내부민심 전환 전략이다. 지속적 경제난에 따른 내부 불만 단속을 위해 3대 악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을 제정하는 등 한류 문화 유입에 극도로 반감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의 전력이 분산된 국제안보의 공백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유엔 대북제재는 물 건너갔고 북한 외교의 만조기(滿潮期)로 강공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3월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의 방북으로 북러의 밀월은 계속될 것이다. 6·25전쟁 이후 평양과 모스크바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호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00세로 서거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1973년 파리평화회담은 월맹이 미군을 철수시켜 베트남을 공산화한 전형적인 평화형 통일전선전술이었다. 북한은 2국가론을 내세우며 전쟁형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은 전쟁형 통일을 선언했지만 우리는 평화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 통일의 원칙과 가치를 재정립하면서 새로운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채택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4년 발표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다양한 시도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핵이라는 엄중한 현실 속에서 수명을 다했다. 껍데기만 남은 민족끼리 개념보다는 휴머니즘 가치와 자유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새로운 통일비전이 마련돼야 한다. 올 한 해 북측의 노이즈 마케팅을 예의 주시는 해야겠지만, 새로운 시대정신(zeitgeist)에 맞는 통일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