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위원장 이상원 서울대 교수)가 국가핵심기술 유출 시 적용되는 형량을 최대 징역 18년까지 높이는 양형기준을 마련했다. 형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스토킹범죄 양형기준도 징역형 위주로 신설했고, 미성년자와 상습적으로 마약을 거래한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하도록 권고하는 등 마약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상향 조정했다.
19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위원회는 전날 회의를 열어 지식재산 및 기술침해범죄의 권고 형량 상향을 골자로 하는 양형기준안을 의결했다. 구체적으로 △국가핵심기술 등의 국외 침해(해외 유출)의 경우 최대 징역 18년 △산업기술의 국외 침해는 최대 징역 15년 △산업기술의 국내 침해는 최대 징역 9년 등을 선고하라는 권고 기준을 마련했다. 산업기술의 국내·외 침해범죄에 대해 각각 최대 징역 6년과 9년이었던 기존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이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 및 국민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주는 산업기술을 말한다. △D램·낸드플래시의 적층조립기술 및 검사기술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패널의 설계·공정·제조‧구동 기술 △하이브리드 및 전력기반 자동차 시스템 설계 및 제조기술 등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어 있다.
스토킹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세졌다. 예컨대 △흉기 등을 휴대한 스토킹범죄는 최대 징역 5년 △일반 스토킹범죄 최대 3년이고,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 위반은 형량 감경 사유가 있어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스토킹처벌법이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음)라는 점을 악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점을 고려,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더라도 '피고인이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처벌불원의 법적·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한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양형위는 특히 기술 유출과 스토킹범죄에 한해 '공탁은 형량 감경사유'라는 취지의 문구를 삭제하기로 했다. 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에 실패했을 때 현금을 법원에 맡겨 피해자가 가져가도록 하는 제도인데, 피해자 측이 공탁금을 수령할 경우 일종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양형위는 "피해 회복 수단에 불과한 공탁을 하기만 하면 당연히 감경되는 것처럼 오인될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형위는 일부 마약범죄의 양형기준도 높였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마약류를 상습적으로 거래하는 등의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하도록 권고했다. 대마에 관해서는 거래뿐만 아니라 투약·단순소지 등 범죄도 징역형이 대폭 상향됐다.
새로운 양형기준안은 내달 16일 공청회를 거쳐 3월 25일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지만, 법관이 여기에 꼭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법관이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기재해야 하므로, 합리적 이유 없이 양형기준을 무시할 수는 없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