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속 재판을 받으러 왔다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피고인이 법정 옆방에서 구속 절차를 밟던 중 도망치려 했다면, 도주죄(체포·구금 상태에서 도망치는 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급심은 무죄로 본 사건이었는데, 체포·구금의 시작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가 쟁점이 됐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도주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해 12월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5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는 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피고인 대기실에 머무르던 중 도주하려다 잡혀, 도주미수 혐의로 재차 기소됐다. A씨는 피고인 대기실 출입문을 열고 나온 뒤 법정 바깥으로 뛰어가려고 했으나, 법정 내 다른 경위들에게 붙잡혔다.
하급심은 도주미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하고, A씨가 처벌 대상이 되려면 형법상 '법률에 의해 체포되거나 구금된 자'로 인정돼야 한다. 법원은 A씨가 사법경찰관(경찰관이나 검찰수사관 등)을 대면하기 전 도주를 시도했다고 보아, 그가 도망친 시점은 구속영장이 집행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체포되거나 구금된 자'로 볼 수 없으니 도주죄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재판부가 법정구속을 명령한 뒤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전달하고, 피고인을 (대기실 등에) 인치했다면 집행절차가 적법하게 시작된 것"이라고 봤다. 이어 "구속영장의 집행을 통해 피고인에 대한 신병을 인계받아 구금을 담당하는 교도관이 곧바로 피고인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였다면 구속의 목적이 적법하게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심 판단과 달리 A씨가 '법률에 의해 체포 또는 구금된 자'에 해당해 도주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검사에 의해 적법하게 행사·지휘가 이뤄져 피고인에 대한 신병확보가 이루어졌다면, 그 피고인은 형법상 도주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처음 밝힌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