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별이 빛나는 밤’은 괴물 망원경 덕분에 탄생했다?

입력
2024.01.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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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벤슨 '코스미그래픽'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1889년 ‘별이 빛나는 밤’에서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그렸다. 미술가들은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 그림이라고 해석해왔다. 천문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 천문학자의 그림이 고흐에게 영감을 줬다는 것.

천문학 시각 자료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이클 벤슨은 책 ‘코스미그래픽’에서 고흐의 마음을 흔든 천문학자의 그림을 소개한다. 아일랜드의 천문학자 윌리엄 파슨스는 1845년 자신의 저택에 지름 1.8m, 무게 6톤의 거대한 망원경을 설치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던 이 망원경은 괴물을 뜻하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렸다. 파슨스는 이 망원경으로 나선 형태 성운들을 발견했고, 소용돌이치는 ‘나선 성운’ 메시에 51(M51)을 세밀한 삽화로 그렸다.

파슨스의 그림은 유럽 전역에 퍼져 1879년 당시 프랑스 베스트셀러 ‘대중 천문학’에 실렸다. 고흐가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것은 이로부터 10년 뒤였다. 저자는 고흐가 파리에 머물 당시 나선 성운 그림에 흥미를 느꼈고 이것이 ‘별이 빛나는 밤’에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천문학이 위대한 예술 작품 탄생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예술이 천문학 발전을 도운 사례도 많다. 덴마크 화가 하랄 몰트케는 북극광 연구를 위해 네 번이나 북극 탐험에 나섰고, 그가 그린 오로라 그림은 오로라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주를 이해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해온 인류 역사에서 천문학과 예술은 한 몸처럼 가까웠고, 책에는 그 방대한 기록이 빼곡히 담겨있다. 기원전 2,000년 무렵 구리 동판에 망치로 내리쳐 새긴 유물부터 최근 슈퍼컴퓨터의 시뮬레이션까지. 인간이 지구, 달, 태양, 행성과 위성 등 우주를 이해해온 과정이 차례로 펼쳐진다. 연대순으로 정리된 시각 자료 아래에 각각 설명을 붙여 이해를 돕는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