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기도 평택 시내 모든 학교가 등교수업을 중단한 지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박정기(44)씨 둘째 아들이 온라인에 뜬 사진을 보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사진엔 경남 의령군 대의초 학생들이 농사일을 체험하고, 골프를 치고,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여행사에 근무하며 어지간한 건 다 접해본 박씨에게도 그 사진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스크를 쓴 것만 똑같을 뿐 코로나19와 무관한 다른 세계 아이들 같았다. 문득 ‘맹자의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데(맹모삼천지교) 한 번을 못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굳이 평택에서 의령까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일단 대의초에 전학 상담을 신청했다. ‘작은학교’라는 건 알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학교는 생각보다 더 작았다. 전교생 17명, 평택에 있는 학교 한 학급(35명)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였다. 학생 수뿐 아니라 학교 건물도 ‘ㄷ’ 자 단층이 전부였다. 그러나 내부 시설은 기대 이상이었고, 돌봄교실이나 방과후수업은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었다. 박씨는 “보통 돌봄교실은 1, 2학년만 신청할 수 있는데 대의초는 원하는 학생은 6학년이라도 다 받아주고, 체험학습 등 프로그램도 우수했다”면서 “전학을 오면 저렴한 값에 주거지도 제공받을 수 있어 초등학생 아이 둘에 아내까지, 가족 전체가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전교생이 20명도 되지 않는 대의초가 대도시에 뒤지지 않는 학습과정을 운영하고, 전학생에게 집까지 제공할 수 있었던 건 경남교육청과 해당 지자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0년부터 힘을 모아 추진한 ‘작은학교 살리기’ 사업 덕분이다. LH가 비용의 70%를 부담해 전교생 60명 미만인 학교 주변에 주택단지를 지으면, 지자체가 편의시설 등을 마련하고, 학교는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구를 유치한다. 단순히 학생 수만 늘리는 게 아니라 전입인구 자체를 늘려 소멸 위기에 있는 마을을 살리자는 취지다. 실제 대의초가 2021년 작은학교 살리기 사업에 선정된 이후 학교가 있는 마쌍마을에는 11가구 44명이 이주해 왔다. 대의면 전체 인구가 650가구, 1,000여 명인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표다. 이주민 모두 대의초 학생과 그 가족들이다. 현재 전교생은 26명, 다음 달 6명이 졸업하고 신입생 8명이 입학하면 28명이 된다. 이 중 64%(18명)는 전학생이다.
15일 의령군 가례면 자굴산 자락에 있는 대의초를 찾았다. 비닐하우스 단지를 마주한 교문으로 들어서자 천연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이 펼쳐졌다. 운동장 한쪽엔 파라솔과 테이블, 의자가 놓여있었다. 겨울방학 중이었지만 트랙을 따라 뛰거나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산책 중이던 박해순(57) 대의초 교장은 “방학 중에도 전교생 대부분이 돌봄교실에 나와 생활한다”며 “신체활동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국어, 수학, 영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파라솔에 머문 시선을 눈치채고는 “아이들과 삼겹살 파티를 벌이는 장소”라며 웃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학교 내부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정갈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돌봄교실, 시청각실, 회의실 등의 역할을 겸하는 도서관이었다. 빼곡한 책들로 자칫 답답할 뻔한 공간에 높은 층고로 개방감을 더한 게 특징이었다.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선생님 무릎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박 교장은 “교사 대 학생 비율이 1 대 2 정도라 아이 한 명 한 명을 살필 수 있다”며 “아이들은 물론 부모님들도 만족도가 높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5, 6학년 교육활동은 ‘세계와 함께 자라는 펀앤런 잉글리시(Fun&Learn English)’였다. 지방은 학습 수준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대의초가 도입한 영어 특색교육 프로그램이다. 박 교장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7시간씩 원어민과 영어 회화 전문 강사가 교대로 오프라인 수업을 하고, 세계 유명 원서를 읽는 온라인 영어 독서 교육도 진행한다”면서 “매년 전교생이 제주도에 있는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 영어교육센터 차세대 글로벌 영어 캠프에 참가하는 등 영어 실력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단연 몸으로 하는 체험활동 시간이다. 지난해엔 영화를 보고, 숲 체험을 하고, 인라인경기장, 워터파크, 스키장에도 다녀왔다. 2년 전 경기도 이천에서 전학 온 문서현(13)양은 “이전 학교에선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체험할 수 있어 재밌고, 모든 비용이 무료라 신기했다”고 했다.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이곳으로 온 박채원(13)양도 “교내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학교가 몇이나 되겠냐, 돈을 내도 모자란데 진급할 때마다 장학금도 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931년 개교한 대의초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년당 2학급씩 전교생 500명이 넘었다. 그러나 다른 시골학교와 마찬가지로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았다.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거나 있어도 1, 2명에 그치는 해가 많았다. 통상 전교생 숫자가 10명 내외로 줄어들면 분교로 전환된다. 분교로 바뀌면 폐교는 시간문제다. 위기를 감지한 군, 교육청, 학교, 마을주민, 동창회, 학부모 등이 머리를 맞댔다. 작은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인근 작은학교들과 연합해 두레오케스트라를 만들고 골프, 승마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도 정기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박 교장은 “오케스트라의 경우 학생 수가 적어 악기 구입이 용이하고, 1 대 1 지도가 가능해 집중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주택과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는 등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작업도 동시에 시작됐다. 사업비는 도와 도교육청, 의령군이 5억 원씩 15억 원을 부담하고, LH가 20억 원을 지원해 충당했다. 온라인으로 ‘학생·학부모 모심 설명회’도 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7명에 불과하던 대의초 학생 수는 사업 첫해 21명, 이듬해는 38명으로 늘었다.
아이들이 늘자 마을에도 생기가 넘쳐났다. 학교 인근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이현재(64)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아이들을 구경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요즘은 하교 시간에 우르르 손잡고 나오는 아이들 보는 게 낙이다”라며 반겼다. 맞은편 식당에서 일하는 대의초 졸업생 이하늘(28)씨도 “모교가 없어질까 봐 걱정이었는데 기쁘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식당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거들었다.
남은 과제는 지속성이다. 작은학교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홍기표 경남도교육청 장학사는 “2020년 전교생이 15명에 불과했던 고성 영오초도 사업 후 30명으로 늘었다”며 “효과가 지속될 수 있도록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