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새마을금고 이사장님한테 잘못 보이면 안 된다고 그러는데 맞습니까? 앞으로 잘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6월 창원에서 열린 '새마을금고 창립 60주년 기념 음악회' 축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창원시장을 세 번, 국회의원을 두 번 지내는 등 지역 정치판의 생리를 잘 안다. 음악회에는 박차훈 당시 새마을금고 중앙회장과 지역 이사장 등이 대거 참석해 세를 과시했다.
다른 정치인들도 틈날 때마다 새마을금고를 향한 '구애 발언'을 쏟아낸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8월 울산 음악회 때 박 전 회장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다. 그는 "오늘 국회가 열려서 서울에 있다가 박차훈 형님이 내려오라고 해서 급하게 혼자만 왔다"고 말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5월 서울 음악회에서 "박 회장님이 '새마을금고에 법이 필요하다'고 저를 찾아오면 다른 의원과 함께 원하는 법안을 모두 통과시켜드렸다"며 "예금자 보호 대상을 전체로 하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켜보겠다"고 약속했다. 새마을금고가 망해도 1인당 예·적금액 중 5,000만 원까지는 중앙회가 지급 보증해주고 있는데, 한도를 무한대로 늘리겠다는 의미다. 그는 새마을금고를 담당하는 국회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전반기 위원장을 맡았다.
여의도 '금배지'들이 새마을금고 간부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건 정치적 계산의 결과다. 대출과 지역 공헌 활동 등을 토대로 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지역 금고 이사장 등에 밉보이면 표를 얻는 데 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립서비스'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법 권한을 활용해 점수를 따려고 한다. 금융 시스템의 약한 고리로 지적돼온 새마을금고 개혁안이 국회 문턱에 걸려 좌초돼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새마을금고 거래자(2,330만 명)가 본다.
한국일보는 2007년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속기록과 새마을금고 관련 발의 법안, 정치인의 공개 발언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토대로 정치인들이 어떻게 금고를 비호해왔는지 추적했다.
새마을금고 개혁 방안의 핵심 중 하나는 어느 부처에 감독을 맡기느냐 하는 문제다. 새마을금고법이 제정된 1982년 이후 줄곧 행정안전부(옛 내무부)가 맡아왔지만 전문성 부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금고 부실 우려 속에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까지 발생하자 감독권을 금융당국으로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신협, 농협 등 다른 상호금융기관의 신용사업 감독권은 금융위원회에 있다.
하지만 감독권 이관 법안은 17년째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뭉갰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분석 결과, 정부는 이미 2007년 새마을금고 감독권을 사실상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로 이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9·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끝내 통과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새마을금고 개혁 입법을 추진했던 한 현역 의원은 "금고 문제를 고쳐보려고 하면 오만 곳에서 (청탁성) 전화가 온다"면서 "일반 국민은 큰 관심이 없는데 이해관계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니 정치인으로선 건드려봤자 손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새마을금고법의 임기 만료 폐기율은 81.8%(20대 국회 기준)로 전체 법안(62.1%)보다 훨씬 높았다. 새마을금고 중앙회 자문위원 출신의 이종옥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당장 문제가 터지면 언론 등이 지켜보기 때문에 국회도 새마을금고를 감싸지 못하지만, 관심이 떨어지면 문제를 개선하려는 논의나 토론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마을금고에 '꽃길'을 깔아주는 법안 처리에는 적극적이었다. 금고 이사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원래 이사장 연임은 한 차례(4년)만 가능했지만, 새마을금고법이 2011년 국회에서 개정돼 두 번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최대 12년까지 금고를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부 이사장들의 '숙원'인 연임 제한을 더 완화해주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9년 민주당 오제세 의원과 전혜숙 의원은 연임 제한을 완전 폐지하거나 3연임을 허용하는 법안을 행안위에 올렸다.
정부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수차례 연임하며 사실상 종신 이사장처럼 군림하는 이사장들이 늘어나면 새마을금고가 '개인 금고'처럼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은 국회에 출석해 "연임 제한 완화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집요했다. 이채익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고 회원의 선택권을 법률이 강제적으로 재단하는 건 무례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기창 새마을금고 중앙회 전무이사에게 "법안이 언제까지 통과돼야 이사장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김민기 민주당 의원은 "새마을금고중앙회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각 의원들의 귀가 아프도록 전화하고 만나라, 이것(연임 완화)에 대해 아무개는 도와주기로 했다 등의 얘기가 나온다. 국회에 대한 입법 로비"라고 꼬집었다. 공방을 거듭하다가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이 법안들은 폐기됐다.
총선이 8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은 더 몸을 사리고 있다. 새마을금고의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개혁 법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앙회장 임기를 4년 단임제로 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조형곤 서민금융선진화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새마을금고 점포는 전국에 3,000여 개로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많아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가 나서지 않으면 금고의 변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