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채 발견된 치매 아버지와 간병 아들… 국가 지원은 없었다

입력
2024.01.17 18:30
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판정 이력 전무
관할 구청 치매안심센터도 등록 안 돼
'간병 살인' 반복되지만… 개선책 더뎌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80대 치매 노인과 그를 간병하던 50대 아들은 국가와 관할 구청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대구 달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18분쯤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화단에 사람이 숨진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은 사망 상태의 50대 A씨와 80대 B씨를 아파트 화단과 주거지인 아파트 내에서 각각 발견했다.

이들은 해당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부자지간으로,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아들이 돌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부친 B씨는 8년간 치매를 앓아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밀 감식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선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도 발견됐지만, 유족 등의 요청에 따라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B씨와 그의 가족은 치매와 관련된 국가 도움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건강보험공단에서 심사하는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은 이력이 없었다. 건강보험공단은 치매 정도에 따라 장기요양등급을 부여해 적합한 지원 서비스를 실시한다. 가장 낮은 등급인 ‘인지지원등급’은 주·야간보호센터 서비스,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은 종일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치매 당사자나 가족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신청하지 않으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신청주의’의 문제점이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또 B씨는 달서구가 운영하는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도 등록되지 않아 구청 복지서비스 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였다. 당국의 외면 속에 아들 A씨가 아버지 간병을 감내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오랜 간병에 지쳐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녀를 살해하는 이른바 ‘간병 살인’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뚜렷한 개선책은 없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대구 남구에서도 중증장애 아들을 40년간 돌보다 살해한 60대 아버지가 재판에 넘겨졌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1급 뇌병변 장애를 앓았고, 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아들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식사와 목욕, 용변까지 도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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