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미술은 현대미술 '셋방살이' ..."국립근대미술관이 필요하다"

입력
2024.01.18 11:00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위한 전국연구자포럼' 19일 창립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이른바 '국민 작가'들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191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활약한 근대미술 작가다. 짧게는 사후 10년, 길게는 100년 뒤 '국립현대미술관(국현미)'에서 이들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그런데 왜 현대미술의 본산인 국현미가 이들을 조명했을까. 이유는 명료하다. 국내에는 근대미술 전문 국립 미술관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국립 미술관·박물관 체계상 19세기 이전 고전미술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다루고, 20세기 이후 현대와 동시대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담당한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꽃을 피운 근대미술은 서울 덕수궁 석조전 서관에 자리 잡은 국현미 덕수궁관의 몫이다.

한국에서 근대미술은 현대미술의 '셋방살이'

"프랑스의 근대미술을 보려면 오르세 미술관으로 갑니다. 영국 런던에서 근대를 알려면 테이트 브리튼을, 현대를 보려면 테이트 모던으로 가죠. 일본 국립근대미술관은 1952년 개관했고요. 한국의 근대미술을 알려면요? 선택지가 없어요. 미술사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임에도 불구하고요."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미술사가 최열(68) 인물미술사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한국 근대미술을 연구해온 그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국립근대미술관(국근미) 설립을 주장했고 2021년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결성을 주도했다. 오는 19일 창립하는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위한 전국연구자포럼'의 대표이기도 하다.

최 소장이 보는 한국 근대미술의 지위를 요약하자면 '셋방살이'다. 현대미술관의 아주 작은 부분을 임대해 연구와 전시의 명맥을 겨우 이어간다는 뜻이다. 그는 "국현미 덕수궁관은 국립미술관 분관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갤러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국현미 학예실장을 지낸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 역시 "국현미 덕수궁관은 소장기능 없이 사실상 (근대미술관) 흉내만 내고 있는 격"(2021년 세계일보 인터뷰)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19일 포럼에서 홍지석 단국대 교수는 "현재 국현미 학예연구실의 근대미술팀은 고작 7명(행정사무직 포함)으로,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는 근대미술에 대한 조사, 연구, 전시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발표할 예정이다.


"국현미 명칭 변경? 우리에겐 독립적인 근대미술관이 필요하다"

국현미도 근대미술이 놓인 곤란한 처지를 모르지 않는다. 최근 김성희 국현미 관장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미술관의 역할이 한정되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이름을 '국립미술관'이나 '국립근현대미술관'으로 바꾸는 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국현미에서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모두 아우른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관장이 근대미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은 좋은 것"이라면서도 "고유성과 정체성을 확고하게 확립한 독립적인 근대미술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혹자는 근대미술의 규모나 범주가 좁고 미숙하며 빈약하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어요. 미술관이 생겨야 시대와 장르에 따라 연구가 고무되고, 대중과 접촉 면적이 확장되며, 수집이 활발해지는 겁니다. 국현미 소장품 외에도 근대미술사 1세기 범위에 해당하는 작품 중 발굴되지 않은 개인소장품이나 국공립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최 소장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국현미 덕수궁관의 존재야말로 오히려 국근미 설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증거라고 본다.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 '백년의 신화, 이중섭'은 5개월 동안 유료 관객만 25만2,466명을 동원했다. 국내 개인전 중에서는 최다 관객이다. "이중섭전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들이 감동을 받은 최고의 전람회로 기억되고 있죠. 이것이 바로 근대미술의 매력이자 저력이며, 근대미술을 위한 미술관이 생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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