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가 최근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쌤앤파커스 출판사가 6년 만에 제목을 바꿔서 낸 책 '벌거벗은 정신력'의 표지가 지난해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 발행) 표지를 베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표절, 모방, 베끼기 등의 관행을 용인해온 출판업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책의 표지나 제목을 따라하는 '카피캣(copycat·모방 제품)' 이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쌤앤파커스 사태는 베스트셀러의 제목과 기획을 베끼기의 일례일 뿐 유사 사례가 차고 넘친다고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를테면 2020년 에세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가 인기를 얻은 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면'(2021),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2022) 등 '기분'과 '태도'를 넣어 비슷한 느낌을 낸 제목의 책이 매년 출간됐다. 같은 책으로 착각할 만큼 비슷한 제목이지만 하나같이 베스트셀러로 떴다.
표지 따라하기는 더 흔하다. 2012년 일본 작가 히가시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후 '불편한 편의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수상한 중고상점' 등 불을 밝힌 상점이 그려진 표지들이 등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흥행 공식을 따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부 책은 독자를 호도하기 위해 일부러 모호한 전략을 취했다고 오인받을 소지가 있다"며 "기시감 있는 후발주자가 빠르게 시장을 점유해 앞선 작품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 카피캣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책 제목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제목은 책의 내용을 표시하는 기능을 할 뿐 고도의 창작성이 요구되는 콘텐츠가 아니라는 법 해석에 따라 저작권법의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제목 아이디어를 차용해 조금만 수정하면 '나만의 창작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표지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보기에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로 단정하지 않는다. 저작권의 주요 판단 기준인 창작성을 표지 디자인 표현 기법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소재와 아이디어에는 보다 느슨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표절 관련 법적 대응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피해자가 고소해야 성립하는 저작권 소송엔 출판사 대표나 편집자가 깊숙하게 관여해야 하는데, 본업을 포기하고 소송에 매달리는 것이 어려운 선택이다. 표절 논란의 피해자인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왜 소송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출판에만 힘을 쏟기도 어려운 상황에선 쉽지 않다"며 "법정에서 이긴다 해도 실익이 크지 않으니 꺼리게 되고, 결국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출판인의 책임감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책은 상품인 동시에 공공재이며, 출판인의 양심이 밑바탕이 되는 산업"이라며 "흥행 도서를 따라하는 카피캣 관행이 일종의 '곁불 쬐기'로 전체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타인의 창작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려는 시도가 도를 넘어서는 경우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출판 단체나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차원의 공론화 필요성도 제기한다. 출판사들의 자체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단체 차원에서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출판계 인사는 "그동안 크고 작은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공론화 시도가 전무했다"며 "이익단체로서 한계를 벗어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존중 문화를 공고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