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자객(刺客)이 활개를 치고 있다. 남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를 뜻하지만, 정치에선 거물급 인사의 낙선을 목적으로 선거에 나선 이들을 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명계 원외 인사들이 비명계 현역의원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친명계 정봉주 당 교육연수원장,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이 비명계 박용진, 전해철, 강병원 의원을 겨누고 있는데, 언론은 이를 '자객 출마'로 부르고 있다.
□ '자객'이란 표현이 정치에 등장한 것은 2005년 9월 일본 중의원 선거 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자신이 추진한 우정민영화법에 반대해 자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의원들을 겨냥해 유명 기업인과 여성 아나운서 등 신진을 내세우며 '자객 공천'이라는 말이 생겼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도 당시 발탁된 자객 중 한 명이다.
□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이전에 '표적 공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1996년 총선 당시 야권 유력 대권주자였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 총재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이 경기 부천소사에 출마하자, 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 후보를 맞세워 승리했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던 문재인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후보가 출마한 부산 사상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20대 여성 손수조 후보를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 최근엔 자객의 칼끝이 자당 인사를 향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서 패한 유승민 전 의원은 "자객의 칼에 맞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후보가 된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꼬집은 것이다. 민주당 강성 원외 인사들이 '친명계'임을 호소하며 비명계 의원들을 겨냥하는 것도 같은 사례다. 필요에 따라 내 편마저 '적'으로 규정해 제거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극단적 진영 정치로 인해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