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이 12일(현지시간) 친(親)이란 예멘 반군 조직 후티 군사시설에 공습을 감행하면서 글로벌 물류의 ‘동맥’ 두 곳도 중동 분쟁 한복판 속으로 휘말려가는 모습이다. 후티의 상선 공격이 이어지던 홍해와 이란이 미국 유조선을 나포한 호르무즈해협 모두 위험도가 상승하고 있다. 3개월 된 가자지구 전쟁이 친이란 세력 대 서방세계의 정면충돌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유가,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군과 영국군은 이날 전투기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등을 이용해 예멘 내 후티 반군 장악 지역 16곳의 군사시설 60곳 이상을 타격했다. 주요 표적에는 레이더, 미사일·무인기(드론) 발사대, 무기 저장소 등이 포함됐다.
미국의 공격은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상대로 공격을 일삼는 후티 반군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다. 후티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1월 19일 이후 홍해를 지나는 각국 상선을 27차례 공격했다.
항로는 살얼음판이 됐다. 연간 세계 상품 무역량의 12%가 홍해를 지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유럽과 아시아를 오간다. 가자지구 전쟁의 중동 전면전 확대를 피하기 위해 군사 대응을 자제했던 미국이 끝내 후티 근거지 직접 타격이라는 정공법을 택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이번 공습 이후 후티 반군이 다시 보복 공격에 나서고 이란마저 개입한다면 홍해와 호르무즈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하기는 더 어렵게 된다. 전 세계 항로에서 물류 위축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하루 전 호르무즈해협에서는 이란 해군이 미국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나포하는 일도 벌어졌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오가는 항로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주요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가 이 해협을 지나 오만만, 아라비아해로 뻗어간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의 원유 수입은 상당 부분 이 항로에 의존한다. 홍해가 아시아·유럽을 잇는 관문이라면, 호르무즈해협은 그야말로 중동산 원유 수송의 ‘생명줄’인 셈이다.
각국은 이 지역을 둘러싼 긴장이 단기간 내 가라앉지 않고 고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 무역로 두 곳이 동시에 봉쇄 위기에 직면하면서 국제유가는 들썩이고 있다. 후티 공습 직후 아시아 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2% 넘게 뛰어 배럴당 74달러에 다가섰다. 국제유가 상승은 각국에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도 여전히 위태롭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 7일까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컨테이너 물량이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4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지난해 11월 말 이후 거의 두 배로 치솟았다.
실제 타격을 입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는 후티 공격으로 인한 배송 지연 탓에 이달 29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독일 베를린 외곽 공장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