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선언과 '대전환' 없는 한국 정치

입력
2024.01.15 00:00
26면
대전환 위기에 '제로섬' 투쟁의 대한민국
급박한 현실 인식 못하는 정치권 리더들
70년 관성의 기득권 깨는 2024년 희망

우리는 변화(change)와 전환(transition)을 혼용하고 있다. 그러나 두 어휘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변화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되 중심으로부터 일시적으로 간격이 벌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경기침체, 새로운 기술의 발전 등은 변화로 볼 수 있다. 반면 전환은 기본 골격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인류가 불(火)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나 기후위기와 같은 것은 전환에 해당한다.

산업혁명 이후 다양한 유형의 많은 변화가 찾아왔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를 동력 삼아 발전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전환, 그것도 대전환의 시대가 되었다. 자발적으로 출생을 줄이고, 기후위기로 자연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은 편안해졌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사람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21세기 들어 역대급 대전환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시각을 좁혀 6·25전쟁 이후 한국은 어떤 국가보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발전해왔다. 이렇게 70여 년을 달려온 한국은 국민소득 기준으로 선진국에 도달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 대전환이 빠르게 다가왔다. 변화에 익숙했던 한국에 대전환은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대전환과 관련되어 있다. 연 2%의 경제성장도 어려워지면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15배나 큰 미국보다 낮아졌다. 모든 산업이 공급과잉에 빠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짙어지고 있다. 사회 전체의 파이가 줄어들자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몫을 뺏어야 하는 제로섬(zero-sum)의 무한 생존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역사상 최고점에 도달했고 이제는 내리막길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감돈다. 반만년 역사의 정점, 즉 피크 코리아(peak korea)에 도달한 것인가?

모든 위기는 사람이 만들지만 해결도 역시 사람이 한다. 전 세계가 함께 겪는 대전환의 고통도 사람 특히 사회의 리더 그룹이 풀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 경제계 등 한국의 리더 그룹은 현재의 '대전환'을 '변화'로만 인식한다. 사회 모든 영역이 과거 경로에서 이탈하고 있지만, 리더 그룹의 생각과 행동은 과거의 변화를 수습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정치를 비롯한 리더 그룹의 생각과 실제 사회와의 간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여야 구분 없이 신당 논의가 활발한 것은 이런 인식과 실제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신당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은 여전히 지난 70여 년의 성장스토리 관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전환을 치유하기 위한 인식과 정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가 4년 전 정치에 입문한 것은 사회 리더 그룹 특히 정치가 대전환을 치유하는 선두에 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이 미래로 가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제로섬 전투에 몰두하고 있다. 편협한 필터로 걸러진 정보(filter bubble)와 자기 확신만 가득 찬 사회에서 정치인의 주장과 외침은 정쟁의 수단으로만 비친다. 오히려 정치인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일반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이번 선거에 불출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대전환 전투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환 시대에 세계는 누가 더 먼 미래를 보는가? 어떤 국가가 빨리 과거의 성장스토리를 버리는가를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70년 관성으로 굳어진 인식과 기득권을 벗어던지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홍성국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