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북풍?… 선거 때마다 기승 부리는 북한의 대남 공작[문지방]

입력
2024.01.14 14:00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은 주적"이라며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어깃장과 도발을 연일 이어가고 있습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잠시 조용했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는 포성과 함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공작을 얘기합니다. 특히 4월 총선을 노린 각종 심리전에 대비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미 북한의 대남심리전을 추적하는 팀까지 꾸렸다고 합니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부는, 대한민국 정치판을 흔드는 바람, 바로 '북풍(北風)'에 잔뜩 긴장하는 모양새입니다.

북한의 선거개입과 심리전,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진보세력의 대단합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이룩함으로써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역적패당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야 한다. 내외 반통일세력들을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궁지에 몰아넣어야 한다."
2012년 1월 1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혁명 전위기구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 신년사설

북한의 선거개입 시도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정은 위원장이 2012년 내놓았던 '대남명령 1호'도 다름 아닌 총선·대선 개입 지시였습니다.

무엇보다 '1987년 대한항공 858 여객기 폭파사건'이 먼저 떠오릅니다. 대선을 불과 19일 앞두고 총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끔찍한 사건이었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 공작원 김현희씨에 의한 공중폭파 테러사건이라고 밝혔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어렵게 하라는 북한의 지시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김씨 진술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됐습니다.

이 사건은 '북한이 선거철을 앞두고 군사 도발 및 무력충돌을 감행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총선과 대선 시기에 북한이 각종 안보 위협으로 한국 정부의 '무능'을 강조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정부 당국은 △1992년 강원 철원 무장공비 침투사건 △ 1997년 부부간첩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 등을 "대남 선거개입 목적의 무력 도발" 사례로 언급합니다. 1997년 보수진영에서 북한에 대놓고 위장 총격을 부탁한 '총풍 사건'은 한 발 나아가 아예 남북이 선거판을 흔들기 위해 함께 공작한 흑역사로 꼽히죠.

'직설화법'을 동원한 관영매체를 앞세운 심리전도 '북풍'으로 곧잘 언급됩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명령 1호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남조선의 진보애국 역량은 강력한 투쟁으로 보수패당(한나라당)의 독재통치의 집권연장 기도를 저지·파탄시켜야 한다"는 '우리민족끼리'의 사설 등이 대표적입니다.

북한의 특정 진영 승리를 위한 선거 개입?...아니요!

북한의 선거개입 시도 정황은 이렇듯 충분합니다. 정부의 경고가 호들갑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죠. 하지만,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북풍은 정말 대한민국 선거판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끼쳤다면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통일부는 최근 △2012년 대남 선전전 △2016년 위치정보시스템(GPS) 교란 △2020년 탄도 미사일 연쇄 발사 등을 북한의 대남 총선 개입을 위한 선전활동의 예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 모두 보수정당이 승리했습니다. 2016년엔 북풍이 역풍이 됐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광명성호 발사 등을 명분으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보수여당과 정권에 국민은 분노했죠.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통일부가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탈북 소식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북풍몰이를 한다는 비난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여론은 2014년 세월호 사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정권 심판' 정서가 강했습니다.

북한의 GPS 교란사건도 따져볼까요. 북한의 GPS 교란행위는 2016년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2010년·2011년·2012년에도 있었죠. 4건의 GPS 교란 모두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통일부는 갑자기 이번엔 사건이 선거개입을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앞뒤가 안 맞습니다.

2020년 총선 당시 핵심 의제는 코로나19와 부동산 정책이었습니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재개된 북한의 도발은 코로나19로 허덕이는 대중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종합하면, 북한의 선거개입 선전활동의 목적은 오히려 모호해집니다. 북풍이 특정 정당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도,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논리도 근거가 약합니다.

2008년 대선의 경우 승패를 가른 핵심 의제는 경제였고 2017년은 국정농단, 2021년은 부동산 정책이었습니다. 2012년엔 북한의 대남 심리전보다는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 논란이 더 큰 파급력을 발휘했습니다.

북한의 노림수?...선거철 혼란을 부추기는 '갈라치기'

윤석열 정부 들어 대남 심리전의 키워드는 '갈라치기'입니다.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문재인 정부를 극찬하면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고, 서해 포사격 '기만전술' 주장을 하며 진실공방을 부추기는 담화를 내놓았습니다. 우리 합참의 정보 수집력을 의심하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빈틈을 노린 담화로 해석이 됐습니다. 북한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화론을 재차 폄하할 '거리'를 던져준, '영리한' 공작전술로 읽히기도 합니다.

해외 영향력 공작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내부 분열을 부추기는 이 같은 심리전을 국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봅니다. 양극화된 담론 속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영향력 공작 지수' 개발…대남심리전, 말은 많지만 결과론적 분석만

아쉬운 점은 북한의 대남심리전과 공작이 실제 한국 정치에 끼치는 영향을 지표·지수화한 연구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선거개입 특징과 그 파급력을 정량화한 '영향력 공작·확대 지표'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외국의 선거개입과 그 위협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죠. 페이스북의 후신 메타는 광고계정의 자금 흐름을 미 의회에서 공개했는데요. 이를 통해 학계는 러시아 유령회사가 텍사스주 반이슬람·친이슬람 시위를 동시에 주도한 사실을 폭로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과 영국 브렉시트 선거를 계기로 진행된 연구 결과들입니다.

반면 70년 넘게 북한과 치열한 심리전을 벌여온 한국에는 어떤 지표도, 검증작업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부 당국도 결과론적인 분석만 내놓을 뿐, 왜 그렇게 분석하고 북한의 대남심리전이 어떤 정략적 영향을 가져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북풍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북한이 선거개입을 하고 있다는 정부의 외침은 또 다른 북풍몰이로 끝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앞에 부는 것은 북풍일까요, 북풍몰이일까요?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