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빨리 행동하자.”
9일 오후 6시 40분 서울 중구 남산1호터널 방면 남대문세무서·서울백병원 정류장. 빼곡한 퇴근 인파 사이로 30대 부부가 연신 어린 두 자녀에게 무언가를 당부하고 있었다. 고개를 쭉 빼고 도로 사정을 살피던 부부는 별안간 아이들의 손을 끌며 뛰기 시작했다. 다른 승객들도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향해 일제히 몰려들었다. 결과는 허탕. 버스 표지판엔 ‘잔여 0석’을 알리는 야속한 문구가 떠 있었다. 30분을 기다리며 놓친 세 번째 버스였다.
최근 불거진 퇴근길 명동 교통대란은 조금 잦아들었다. 명동입구를 지나는 광역버스 노선은 31개인데, 질서를 유지하겠다며 노선별 줄서기 대기판을 12개만 설치하다 보니 도로 정체는 심각해지고 대기시간만 길어졌다. 불만이 속출하자 계도 요원 투입 등 서울시의 긴급 대응으로 이곳의 사정은 나아졌다. 하지만 경기도민들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백병원 정류장이 퇴근길 혼란의 진짜 주범이라는 것이다.
백병원 정류장에는 광역·직행 버스노선 30개 중 28개가 명동입구를 거쳐 들어온다. 어찌어찌 명동입구를 통과해도 교통체증이 되풀이된다는 뜻이다. 이곳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지난해 말부터 시행된 광역버스 ‘입석금지’ 정책. 퇴근시간대엔 앞선 정류장에서 만석이 되기 일쑤라 대다수 버스들이 그냥 지나친다. 이날 분당구 서판교로 가는 정모(70)씨는 “4분 후 도착한다는 버스는 도통 오지 않고, 그나마 도착한 버스도 전역(명동입구)에서 이미 만석이 돼 버렸다. 벌써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더 심각한 건 이 정류장이 명동입구와 달리 중앙차로 한가운데 떠 있는 ‘교통섬’이라는 사실이다. 60m 정도 길이의 정류장 폭이 3m에 불과해 인파가 몰릴 때면 안전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이날도 버스의 남은 한 자리에 타기 위해 시민 30여 명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뛰자 떠밀린 이들이 정류장 보도 끝에서 휘청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버스를 타려는 시민들만 차곡차곡 쌓이면서 퇴근시간대 교통섬은 100명은 족히 넘는 승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이병훈(54)씨는 “명동 교통대란으로 체증이 더 심해져 6시 땡 치면 뛰어나와 버스를 타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1)씨도 “환승 가능한 버스들을 오는 대로 잡아타려고 버스 애플리케이션(앱)에 따로 표시해뒀다”고 했다.
때문에 시민들은 당국이 명동 쪽만 주시할 게 아니라 백병원 정류소에 대한 분산 방안, 즉 정체 구간 전체의 교통대란을 해소할 근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광역버스 노선 중 수원·용인 방면 6개 노선을 이달 넷째 주까지 조정하는 등의 수습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남산1호터널 방면 정류장의 교통체증 문제에는 딱히 입장이 없다. 명동입구에서 8년간 버스로 통근한 박은숙(43)씨는 “많이 나아지긴 했다”면서도 “일부 버스노선을 바꾼다 해도 결국 백병원 방향으로 진입하는데 더 뒤엉켜 사고가 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각 정류장의 수용 가능 용량이나 체증 노선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분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