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한 사람이 여러 수술실을 오가면서 동시에 복수 환자의 수술을 진행하는 '공장식 성형수술'. 이 과정에서 의사 대신 간호조무사가 의료행위를 하다가 환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면, 의사가 아닌 간호조무사에게까지 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단독 강정연 판사는 성형수술을 받은 뒤 숨진 고 권대희씨의 유족이 간호조무사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0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의원에서 일하던 A씨는 2016년 9월 권씨가 사각턱 축소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출혈이 발생하자 의료면허가 없음에도 30분 간 압박지혈을 했다. 당시 의사 장모씨는 권씨에게서 출혈을 확인하고도 다른 환자 수술을 위해 A씨에게 지혈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의사가 제대로 수술을 관리하지 않은 결과, 25세 취업 준비생이던 권씨는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고 뇌사 상태에 빠진 뒤 결국 숨을 거뒀다.
의사 장씨는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고, A씨는 무면허 의료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300만 원의 선고유예를 확정받았다. 형사 재판이 끝나자, 유족은 민사 책임까지 묻기 위해 지난해 7월 A씨를 상대로 5,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씨는 "아들의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간호조무사는 피사용자라는 이유로 선고유예만 받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단 한 번의 사과와 반성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사의 지시를 받고 지혈한 간호조무사의 민사적 책임까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씨는 선고 직후 기자들을 만나 "이 청구를 기각했다는 건 대한민국 수술실은 의사가 돈만 주면 아무나 들어가서 (수술)해도 책임이 없다는 뜻"이라고 주장하며 항소를 시사했다.
다만 권씨 유족은 장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2019년 6월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장씨 등은 대량출혈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했는데도 주의의무를 위반해 권씨의 출혈량 등 경과 관찰은 물론, 지혈 및 수혈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턱뼈를 잘라내는 수술은 대량출혈을 동반할 수 있는데도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유족 측에 4억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장씨 등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