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보다 못한 곳"... 손글씨로 남긴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입력
2024.01.10 14:02
진실화해위, 수용자 자필 자서전 공개
참상 상세히 기술, 정신질환 강제투약
추가 피해자 153명 확인... 누적 490명

누적 피해자만 500명에 가까운 부산 형제복지원의 처참한 인권유린 실태를 입증하는 수용자의 자필 자서전이 공개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에 1년간 강제수용됐던 고(故) 임모씨의 자서전을 확보했다고 10일 밝혔다. 저자 임씨는 1984년 경범죄로 형제복지원에 인계됐다가 이듬해 탈출했다. 그는 복지원에 있을 때 부산 시내 파출소를 돌며 새로운 수용자를 모으고 신입들의 신상기록카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다. 면담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분류하는 역할도 했다.

임씨는 자신이 목도한 복지원의 참상을 1994년 수기로 남겼다. 자서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로 분류되면 복지원 병동에 갇혀 약물을 강제 투약당했다. 자력으로 시설을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임씨는 "형무소는 형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곳은 가족이 데려가지 않으면 나갈 수 없으니 형무소보다 못하다"고 적었다.

진실화해위는 "강제수용 뒤 본부요원으로 발탁되는 과정, 업무 내용, 원내 생활상 등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돼 있어 복지원 내부 실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료"라고 임씨의 자서전을 평가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힌다. 1960년부터 1992년까지 이곳에서는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는 물론 시신 암매장까지 자행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형제복지원 사건 3차 진실규명 조사를 통해 고인이 된 임씨를 포함해 153명의 추가 피해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선 두 차례 조사에서 337명이 확인돼 누적 피해자는 490명으로 늘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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