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동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태영건설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불안감으로 추가 긴축은 멀어졌지만,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진단이다.
한은 금통위는 11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현재 연 3.5% 수준인 기준금리의 조정 여부를 논의한다. 박춘섭 전 금통위원이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이번 회의는 금통위원 6명(이창용 총재 제외) 중 한 자리가 공석인 채 진행된다. 금통위는 지난해 1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마지막으로 2·4·5·7·8·10·11월 7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지난해 7월부터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묶어 한미 금리차는 반년째 사상 최대인 2%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시장 인식이다. 수출이 회복되면서 성장세가 조금씩 개선되는 흐름이긴 하나, 고금리 여파로 소비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이후로 부동산 PF 문제까지 불거졌다. 건설사들의 단기자금 조달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 기준금리 인상 충격까지 더해지면 사태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주요국 중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다. ‘물가’와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11월보다 소폭 내렸지만, 여전히 목표 수준(2%)을 웃돌았다. 한은은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이 가격에 전가되면서 물가가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해 왔는데, 최근엔 중동 불안으로 국제유가 불확실성까지 한층 커졌다. 우리 경제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역시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8개월 연속 증가 추세다.
결국 이번에도 금통위는 '현상 유지'를 결정하며 매파(통화긴축 선호) 기조를 놓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닿는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1월 금통위는 현재의 긴축적인 수준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금리 인하 논의는 섣부르다는 의견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한은도 ‘2024년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서 “물가가 목표 수준에 안정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기조를 지속하겠다”며 “가계부채에도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겠다”고 예고했다.
같은 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여부를 결정하는 채권단 협의회가 열리는 만큼 금통위에서도 관련 언급이 나올지 주목된다. 다만 이 역시 통화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 PF 문제가 전체 금융 시스템 위기로 확산된 상황이 아니어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문제로 한은 금리 인하에 거는 기대가 상당히 높아졌다”면서도 “정부와 금융당국이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태 확산 방지에 총력을 다하고 그 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은이 물가 둔화를 확인한 뒤 금리 인하에 나서는 쪽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