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공격한 피의자 김모(67)씨가 범행 직전 부산·울산·양산·김해 등을 돌며 이 대표 방문지를 사전 답사하거나 이 대표 동선을 계속 추적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과거 태극기집회 등에 참여하며 야권에 불만을 드러냈고, 범행 직전에는 주변인들에게 신변을 정리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발적으로 정치인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범행을 준비한 '계획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4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충남 아산시에 거주하는 김씨는 지난달부터 범행일인 이달 2일까지 여러 차례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찾아 이 대표와 민주당 관련 행사·일정에 참석했다. 가장 처음 그의 모습이 목격된 것은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의 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현장이었다.
실제 범행을 위해 그가 집을 나선 것은 1일. 그는 천안아산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으로 이동한 다음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노무현 전 대통령 자택)과 양산시 평산마을(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았다. 두 곳 모두 이 대표가 방문했거나 방문하려던 곳이다. 봉하·평산마을을 다녀온 그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은 2일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찾아 이 대표에게 공격을 가했다. 집에 있는 흉기를 쓰거나 상점에서 흉기를 사지 않고, 직접 등산용 칼을 개조해 사전에 무기를 준비했다는 점도 계획범죄임을 암시하는 정황이다.
김씨의 평소 정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증언도 나왔다. 주변인들은 그가 올해 9월까지 태극기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며 김씨와 교류했다는 A씨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에 배낭에 작은 태극기를 꽂고 지하철역 앞에서 단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며 "처음 직접 본 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18년이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매주 목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범행 직전 임대료 연체 문제를 해결하는 등 신변을 정리하려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씨는 성탄절 직후인 지난달 26, 27일 자신의 부동산중개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임대인 B씨와 만나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어찌 됐든 (연체 임대료를) 정리하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김씨가 진지하게 정리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당시엔 '정리'라는 말을 밀린 임대료를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신 '죄송하다, 죄송하다'고 해 상황이 어려운 것은 알고 있었으니 '형편껏 하시라'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부터 사무실 월세를 수차례 납부하지 못해, 미납 규모가 약 5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경제적인 문제로 꽤나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는 부동산에서 일하던 중개보조원 2명까지 내보내고 혼자 업무를 처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C씨는 "경기도 안 좋고 거래도 줄어드니 몇 개월 전에 남은 직원 한 명도 그만뒀다고 들었다"며 "인근에서 20년 가까이 중개업을 하셨는데 코로나 이후 계속 내리막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인중개사는 "예전에는 건물 통매매도 중개하는 등 일을 잘했고, 경기가 어렵다고 월세 밀릴 분은 아니라 의아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전날 김씨의 부동산 중개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여야 협조를 받아 김씨의 당적 여부를 확인했다. 경찰은 김씨의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 과도, 칼갈이 등 압수물 14점을 확보하는 한편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계획범죄 여부 등을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