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스프레이 잉크 낙서 테러'로 훼손된 서울 경복궁 담장이 응급 복구 작업을 마치고 4일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1억여 원으로 추산되는 복구 비용에 대한 손해배상을 낙서범과 가족들에게 청구할 방침이다. 1차 낙서범은 미성년자여서 부모에 비용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한다. 실제 손해배상이 이뤄진다면, 2020년 관련 법조항이 신설된 이후 문화재 원상복구 비용을 책임자로부터 징수한 첫 사례가 된다.
4일 문화재청은 '국가유산 훼손 재발방지 종합대책 언론설명회'를 열고 지난달 16일부터 28일까지 총 8일간(한파 기간 제외) 진행된 경복궁 담장 낙서 보존처리 경과를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낙서로 인한 손상 복구 작업이 완료된 비율(공정률)을 약 80%로 본다. 이날 가림막을 해체해 시민에 공개된 담장에선 육안으로는 낙서를 찾기 어려웠다. 다만 여러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동원해 낙서를 지우느라 담장이 깎여나간 흔적은 남았다. 훼손 전의 석재보다 색이 밝았고, 코앞까지 다가가 담장을 들여다보면 지워지지 않은 붉은 잉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과장은 "모니터링을 거쳐 석재 표면 상태를 점검하고 최종 마무리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응급 복구에는 레이저 세척기, 스팀 세척기, 블라스팅(연마제가 포함된 압축 공기와 물 등을 분사해 세척하는 방식) 장비 등 전문 장비들이 총동원됐다. 장비 임차료만 946만 원에 달한다. 이 외 방진복 등 소모품 비용으로 1,207만 원이 들었다. 낙서범들의 철없는 문화재 훼손 행위로 최소 2,000만 원이 넘는 혈세가 낭비된 것이다. 여기에 인건비를 더하면 복구에 들어간 비용은 1억 원대로 급상승한다. 복구 작업에는 국립문화재연구원과 국립고궁박물관 등 문화재 보존처리 전문가 165명과 현장 업무를 담당한 궁능유적본부 직원 65명 등이 투입됐다.
문화재청은 인건비를 포함한 전체 복구비용을 감정평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감정한 후 전액 손해배상 청구를 할 예정이다. 개정 문화재보호법 83조3항은 문화재를 훼손한 자에 원상복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조항은 올해 5월 17일부터 시행된다.
미성년자인 1차 낙서범에도 손해배상을 피하지 못한다. 고정주 경복궁 관리소장은 "변호사 자문을 받아 보니 미성년자에게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다만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부모에게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낙서 테러'를 계기로 서울 도심 4대 궁(덕수궁·창경궁·창덕궁·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는 물론이고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전국의 국가유산 훼손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폐쇄회로(CC)TV를 늘린다. CCTV 14대가 설치된 경복궁 외곽에는 올해 안에 20대가 추가된다. 내년까지 창덕궁(21대), 창경궁(15대), 덕수궁(15대), 종묘(25대), 사직단(14대) 등 모두 110대가 추가 설치된다. 야간 외곽 순찰 횟수를 늘리고, 관할 경찰서와 협조 체계도 구축한다.
문화재청은 전국에 있는 국가유산에 설치된 CCTV 전체 현황을 이달 중 재점검하고, '나홀로 국가유산' 등 순찰이나 모니터링 범위 밖에 놓인 국가유산을 파악해 감시 기능이 강화된 지능형 CCTV를 확대 설치, 운용한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지능형 CCTV는 문화재의 인위적 훼손을 조기에 인지해 자동으로 알람과 경고 방송을 송출하고 현장출동 체계로 연결되는 첨단기술을 적용한 관리 방식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경복궁에 인위적 훼손이 발생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국가유산 보존을 통해 문화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여 실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