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결혼의 꿈'...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규

입력
2024.01.03 18:30
대책위, 30명 사례 담은 전자책 발간
예비부부, 사회초년생 등 피해자 다양
책자 인쇄해 정당·정부기관 전달 예정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A씨는 2020년 1월 틈만 나면 부동산 앱을 들여다봤다. 새신랑과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신혼집 지역은 직장과의 거리를 고려해 대전 유성으로 점찍어뒀다. 전세로 2년 정도 지내며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을 준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그달 27일, 부동산 앱을 검색하던 A씨의 눈에 매물로 올라온 지족동 한 다가구주택이 들어왔다. 매물을 올린 부동산에 연락하니 "조건이 좋아 많은 사람이 보고 간 매물이니 계약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계약을 종용했다.

지인과 함께 부동산 사무실을 찾은 A씨는 임대인 B씨, 공인중개사 등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중개인과 임대인 B씨는 "건물 시세는 18억 원, 근저당은 7억 원에 선순위 보증금은 3억 5,000만 원으로, 합산금액이 60% 정도밖에 안 되는 안전한 건물"이라고 했다. 보증보험가입은 추후 진행하라고 했다. A씨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결국 전세 1억3,000만 원에 계약을 했다.

그리고 9개월 뒤인 그해 11월, A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찾아가 보증보험가입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건물 시세 대비 근저당 비율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곧바로 중개인에게 "가입이 안 된다는 사실을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졌지만 "설명했다.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이후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던 A씨는 임대 기간 만료가 다가온 이듬해 10월 이사를 결정한 뒤 B씨에게 연락했지만, 받질 않았다. 부랴부랴 계약서 등 서류를 다시 확인해 기재돼 있는 선순위 보증금이 가짜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부동산중개사는 자격증도 없는 보조 중개인이었다. 주변 매물에 대해 추가로 알아봤던 다른 부동산은 계약을 한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B씨의 매물을 중개한 곳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B씨에게 피해를 당한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A씨는 신혼님의 꿈이 악몽으로 변하면서 올해 봄 하려던 결혼을 무기한 연기했다.

대전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는 A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사례를 담은 '월세, 전세 그리고 지옥'을 전자책으로 발간했다. 60여명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사례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해 이 가운데 지옥과도 같은 30명의 피해 사례를 생생하게 담았다. 대책위는 이달 내 사례집을 책자로 인쇄해 각 정당과 정부기관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향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전세사기 피해의 심각성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