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가 2001년 발생한 홍제동 화재참사 현장을 '소방영웅길'로 이름 붙인다. 당시 구조활동을 하다 순직한 소방관 6명을 추모하고 각종 재난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겠다는 취지다.
3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달 27일 '명예도로명 부여를 위한 지역주민의견 수렴 공고'를 내고, 홍제동 화재참사가 발생한 통일로37길 일대 폭 10m, 길이 382m 거리를 '소방영웅길'로 명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주민 여론 등을 수렴해 특별한 반대 여론이 없다면 순직 23주기가 되는 올해 3월 4일부터 지정된다. 소방관을 기리기 위한 명예도로는 서울에서 처음이다. 이성헌 구청장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순직한 소방관들을 기억하는 명예도로로 지정해 일선 소방관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소방영웅을 기억하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홍제동 화재참사는 지난 2001년 3월 4일 새벽 홍제동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구조활동을 벌이던 소방관 6명(박동규·김철홍·박상옥·김기석·장석찬·박준우)이 순직한 참사다. 당시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46명이 출동했는데, 이면도로에 들어찬 불법 주정차 차량 탓에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관들은 당시 집주인 선모씨의 "아들이 안에 있다"는 말에 화마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져 매몰됐다가 변을 당했다. 1945년 이후 구조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총 426명인데 홍제동 화재참사는 단일 화재로는 가장 많은 소방관이 숨졌다. 참사 이후 소방관들에게 방화복이 전면 보급됐고, 의무소방대 창설 계기가 됐다. 6명의 소방관이 순직했으나 정작 방화범이었던 선씨의 아들 최모(당시 32세)씨는 사고 당일 술에 취해 어머니와 다툰 뒤 자신의 방 안에서 불을 질렀고, 불이 크게 번지자 겁을 먹고 다른 곳으로 도망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홍제동 화재참사가 발생한 곳을 소방관들을 위한 명예도로로 지정하자는 의견은 정치권에서 먼저 제기됐다.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홍제동 화재참사는 대한민국 소방관의 숙명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고"라며 "그들이 지켜낸 그곳을 소방관길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요청했고, 오세훈 시장은 "자치구청장과 협의해 명예도로로 지정하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명예도로는 실제 주소로 활용되지는 않지만, 지방자치단체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지역과 관련이 있는 유명 인물이나 역사성, 공익성 등을 검토해 지정할 수 있다.
화재 진압 중 숨진 소방관을 기리기 위한 명예도로 지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울산 중구는 2021년 6월 건물 화재현장에 투입됐다 순직한 고 노명래 소방교의 이름을 따 울산교사거리~울산시립미술관 앞 도로 470m 구간을 '소방관 노명래길'로 지정했다. 경기 평택시도 2015년 서해대교 화재 당시 순직한 고 이병곤 소방령을 기리기 위해 2021년 11월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인근 도로를 '소방관 이병곤길'로 이름 붙였다. 오 의원은 "홍제동 화재참사는 6명 소방관의 순직을 넘어 지금도 위험을 무릅쓰는 전국 6만 소방관의 숙명을 상징한다"며 "세월을 넘어 끊임없이 이어진 소방관의 사명이 명예도로의 이름으로 시민 곁에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