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은천(64) 오비오 대표는 한국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그 근거로 일본 시장의 경험을 꺼냈다. 1998년 정수기·냉온수기 제조 전문기업 오비오(OVIO)를 세우고 2001년부터 꾸준히 일본 정수기 시장 문을 두드린 끝에 지난해 매출 940억 원의 강소기업으로 키웠다는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오비오는 주로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에게는 낯선 브랜드다. 2020년에는 삼성전자와 협력해 '비스포크 정수기'를 합작 개발했고 지난해에는 코웨이의 일본 ODM 제품 개발을 맡았다.
오비오가 정수기 업계에서 주목받는 건 일본 시장에서 거둔 성과 덕분이다. 일본은 철저한 수질 검사와 정수 시스템 덕에 수돗물 음용률이 50%가 넘는다. 가정 정수기가 일반화된 국내 시장과 달리 일본 국민 2명 중 1명은 수돗물을 직접 마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전염병이나 위생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본에서도 깨끗한 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오비오는 '현지 맞춤 전략'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했다. 일본은 주거 형태가 임대형이 많기 때문에 정수기를 설치할 때 벽에 구멍을 뚫는 걸 꺼리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오비오는 구멍이 필요 없는 '급수용 워터서버 제품'(수돗물을 정수기에 부어 사용하는 제품)을 최초로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대표는 "일본은 구멍을 전문 업체가 뚫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며 "일본도 1, 2인 가구가 많기 때문에 가정에서 간편하고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비오는 지난해 일본 매출만 640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정수기 시장이 레드오션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과 달리 글로벌 정수기 시장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은 물에 석회석이 많이 녹아 있어 정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비오도 일본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는 정수기가 가정용 필수 전자제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세계적으로는 이제 막 정수기를 알기 시작하는 단계"라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비오에 올해는 매우 중요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품을 한국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혼자나 둘이 사는 가구를 겨냥해 전기 없이 필터로 정수하는 '무전원 정수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일본에서 많이 팔렸던 '급수식 정수기'도 국내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 대표는 "물은 하루 종일 마셔야 하기 때문에 신뢰가 굉장히 중요한 게 정수 산업"이라며 "오비오 브랜드로 신뢰를 쌓으며 새로운 시장에도 열심히 도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