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에서 정부·여당과 야당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이 과반에 육박하며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건은 아직 마음을 굳히지 않은 나머지 절반의 표심이다. 특히 여야 모두에 회초리를 들겠다고 경고하는 이른바 동시심판론자들의 마음을 어느 정당이 사로잡느냐가 총선의 최대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신년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론은 52%, 야당심판론은 48%를 기록했다. 다만 총선 투표 의향은 엇갈렸다. 지역구 출마자 가운데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응답은 29%로,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 의견(25%)보다 높았다.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다소 우세하지만, 야당을 향한 표심으로 옮겨붙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은 "정권심판론이 과반을 넘겼지만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넘어가지 않는 것은 야당심판론이 중도층에서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야에 모두 비판적인 동시심판론자들의 표심이 어느 쪽과 연합하는지가 총선 판세를 가를 주요 변수"라고 분석했다.
실제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를 심판해야 한다는 '동시심판론' 응답자 중 44%는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지 후보를 유보하고 있다는 전체 응답(35%)보다 높은 수치로, 동시심판론자들의 표심 유동성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파악된 동시심판론자들은 전체 유권자 지형의 22%에 달한다. 일방적 정권심판론은 30%, 일방적 민주당심판론은 26%, 선거 기권 가능성이 큰 냉소층은 22%로 나타났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는 정부·여당 및 야당에 대한 심판 여부를 각각 물어 4개 유형을 분류하는 교차 분석틀을 활용했다.
동시심판론자들은 과거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각각 지지했으나, 현재는 지지를 철회했거나 유보한 이른바 '이탈보수', '이탈민주'로 분류되는 이들을 말한다. 여야 어느 한 진영에 공고히 속하지 않은 채 여야를 넘나드는 표심으로, 선거 때마다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했다. 2012년 안철수 현상과 2016년 총선 당시 제3지대 돌풍이 대표적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탈 세력'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증가세다. 정 원장은 "2020년 총선 당시 압도적 승리에도 국정운영의 변화 기조가 보이지 않자 돌아선 이탈 민주층과 2022년 지방선거 승리 이후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 행태에 반발해 등을 돌리기 시작한 이탈 보수층이 결합된 형태"라며 "양당 공히 이들이 이탈하면서 50% 가까이 치솟았던 정당 지지율이 30%대까지 빠지고 있는 게 그 근거"라고 설명했다.
야권 강세로 분류돼온 '3040세대, 중도·진보 성향, 수도권·호남 지역'에서 동시심판론이 더 두드러지는 모습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호남에선 여당도 야당도 비판하는 동시심판론이 33%로, 일방적 정부심판론(41%)과의 격차가 한 자릿수에 그쳤다. 호남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TK(대구·경북)와 PK(부산·울산·경남)에서 동시심판론과 일방적 야당심판론의 격차가 10%대로 꽤 벌어져 있는 결과와도 차이가 있다.
정 원장은 "정권심판론이 높은 곳이 동시심판론도 높은 경향성을 보이고 있어 절대적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국민의힘 지지층 결집도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실망이 커지는 흐름은 불안요인이 아닐 수 없다. 이탈하려는 민주당 지지층을 복원할 리더십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여야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다는 동시심판 흐름은 강한 현역 물갈이 교체 요구로도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유권자의 62%는 자신의 지역구에 현역 의원이 아닌 새 인물을 원한다고 답했다. 과거 안철수 신당처럼 언제든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할 인물이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다는 경고는 늘 상존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