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익편취’는 기업이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실적으론 주로 재벌 기업이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상장사인 경우 30%)인 계열사 등에 일감을 몰아주는 비리가 문제가 돼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비리가 포착될 경우, 사익편취 행위를 벌인 기업(법인)과 사익을 챙긴 총수 일가 등을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 고발지침은 부당 이익이 총수 일가로 귀결됐어도 그들이 사익편취 행위를 결재·지시하는 등 명백한 관여가 드러나는 경우만으로 총수 일가 고발을 사실상 제한해 왔다.
▦ 이런 비합리적 고발지침 때문에 뻔뻔스러울 정도의 소송까지 벌어졌다. 태광그룹에서 경영기획실이 나서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T사와 M사의 김치와 와인을 전 계열사가 구매토록 해 약 130억 원의 매출을 몰아줬다. 공정위는 이 전 회장의 지시 정황, 사익의 종착지가 이 전 회장 일가라는 점이 명확함을 들어 과징금 부과(21억8,000만 원)와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전 회장과 태광그룹 19개 계열사는 결재·지시 등 관여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처분 취소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원심은 이 전 회장의 관여 정황이 명백하지 않다며 태광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3월 결재·지시 증거가 없어도 이 전 회장 등이 김치와 와인 판매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몰아주기 관련 보고를 받고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면 회사에 대한 이 전 회장 일가의 실질적 영향력, 부당이익의 귀결 등을 감안해 공정위 처분이 정당했다고 최종 판결했다. 총수 일가 고발 및 처벌의 관건인 ‘명백한 관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렸던 셈이다.
▦ 대법원의 진전된 해석과 판결에 맞춰 공정위는 지난달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를 저지른 회사를 고발할 때 부당 이익의 최종 수혜자인 총수 일가를 원칙적으로 함께 고발하는 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가 반발하고, 정부 내에서도 민간 주도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 ‘기업 옥죄기’로 비칠 수 있다는 등 묘한 기류가 흐르더니 결국 공정위가 해당 내용 개정을 철회한 것으로 지난 28일 확인됐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 지원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관철하는 공정성을 보여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