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사 집안의 차남 에드워드 로체스터는 야성적인 매력이 있다. 그는 19세기의 어느 날 대서양의 사르가소 바다를 건너 자메이카로 들어간다. 부친의 유산은 장남에게 상속되는데, 넉넉하게 살려면 그곳의 부잣집 딸 앙투아네트 메이슨과 결혼하기 위해서다. 자메이카는 영국인이 식민지로 삼고 대농장을 일군 곳이다. 노예 해방 후에는 현지 흑인들이 종종 보복을 하곤 했다.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는 첫 남편이 숨진 후 곤경에 처했다가 영국인 메이슨과 재혼한 뒤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메이슨의 실언에 흑인들이 찾아와 저택에 불을 지르자 아들을 잃고는 정신이 나가버린다.
앙투아네트는 흑인 유모가 "태양이 몸속에 있다"고 할 만큼 마음이 맑다. 메이슨이 숨지며 물려준 재산이 많지만 원주민들의 울분을 두려워한다. 그녀는 결혼하여 행복을 맛볼 줄 알았지만 로체스터는 타산주의자이며 바람을 피운다. 그는 원주민이 편지를 보내 "당신 부인은 정신병을 내려받았고 바람기가 있다"고 모함하자 그대로 믿는다. 로체스터는 관습에 따라 부인의 재산을 모두 가진 후에 이름까지 '버사'라고 바꿔 부른다. 영국에 와서는 버사를 대저택의 다락방에 가두고는 하녀가 '이 정신병자'를 지키게 한다.'
소설 '제인 에어'에는 제인이 흠모하는 '로체스터 주인님'이 나온다. 그녀가 가정교사로 입주한 로체스터의 대저택에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있어서 이유 모를 불이 나거나 밤중에 기괴한 소리가 퍼진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 이가 버사이다. 소설가 샬롯 브론테는 왜인지 버사에 대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지 않고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을 방해하는 존재 정도로 그린다.
자메이카의 이웃인 도미니카에서 자란 여성 소설가 진 리스는 영국으로 와서는 사투리 등으로 따돌림을 당했는데 '제인 에어'의 버사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꼈다. 리스는 27년간이나 침묵에 잠겼다가 일흔여섯 살인 1966년에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인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발표한다. 앞서의 소개와 같은 내용으로 '제인 에어'의 프리퀄(앞선 이야기)인 것이다. 리스는 버사만큼 빈궁한 생활을 해왔지만 이 소설이 세계적 격찬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문학사에 빛나는 작가가 된다. 이듬해는 프랑스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에 나오는 원주민 '방드르디'의 이야기인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나와 프리퀄 등의 방식을 쓰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꽃을 피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나폴레옹'을 보니 영국인 감독이 프랑스의 헌법을 만든 영웅을 보는 시각은 이렇게 프랑스인들의 시각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영화 '괴물'도 학부모, 담임, 아이의 시선으로 바꿔가며 교실에서 벌어진 학폭의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일본은 일찍이 소설과 영화 '나생문'을 통해 '시점을 바꾸면 사실의 실체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선보인 사례가 있다.
한 해 내내 책을 읽어도 내가 무엇이 바뀌었는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무엇이든 어제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내가 변화한 것 같다. '오늘부터는 세상을 남의 눈으로도 보아서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이것이 새해 첫날 강렬하게 품어보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