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팝콘·피자에 묵은지 가루 뿌려요" 한국인은 모르는 미국인의 김치 즐기는 법 있었다

입력
2024.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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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떠오르는 수출 에이스
美 음식과 곁들이는 잼·소스·시즈닝 인기
뉴욕 BBQ에선 '치맥' 보다는 '치소' 불티
K콘텐츠 타고 '한식은 소주 곁들여야'




치맥(치킨+맥주)이 아니었다. 치소(치킨+소주)였다.


'불금'이던 지난달 22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한인타운의 BBQ 매장 지하 1층은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아들 줄리안(41)에게 이끌려 처음 온 프랑스인 캐서린(69)은 콤보(양념치킨 반, 프라이드치킨 반), 허니갈릭, 갈비 윙 등과 맥주, 소주를 함께 먹었다. 특히 그는 "소주가 음식과 먹기에 더 부드러워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미국에서는 보통 맥주만 따로 마시지만 이날 매장에서는 음식과 소주, 맥주가 함께 올라와 있는 테이블이 여럿 눈에 띄었다. 김민혁 점장은 "많은 손님들이 한국 음식은 맥주보다 소주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맥주보다 소주가 더 많이 팔리고 일반 소주보다는 복숭아 맛 등 도수가 높지 않은 과일 소주를 더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멕시칸 음식=테킬라', '스테이크=버번위스키'처럼 '한식=소주'라는 인식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 등 K콘텐츠가 키워줬다. 소주 특유의 초록색 병이 한식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이날 매장에서 순살 치킨에 소주, 맥주를 섞어 '소주밤(Soju bomb)'을 만들어 마시던 미국 여성 세일라(21)는 "'힘쎈여자 도봉순(2017)'을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떡볶이(tteokbokki)를 코리아타운에서 먹어봤다"는 로즈(21)는 "한국 음식은 새로운 음식이라 신선하게 다가오고 친구랑 나눠 먹기 좋다"며 소개했다.



김치, 코로나19 거치며 건강식으로 더 주목


김치 국물 가루로 만든 '김치킥'을 팝콘이나 피자에 뿌려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김치 브랜드 '종가'로 잘 알려진 대상은 미국에서 한국에는 없는 제품 '김치킥'을 판다. 총각김치·열무김치 국물을 얼려 파우더로 만든 레드 파우더백묵은지 국물을 활용한 화이트 파우더를 삼겹살 등 고기 요리부터 감자튀김, 피자, 팝콘 등에 뿌려 먹으면 감칠맛과 풍미가 살아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달 미국 1, 2위 도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돌아본 여러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는 김치 핫소스, 김치 페이스트 등 독특한 김치 제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는 "현지인들이 한국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맛본 다음 자신의 집 식탁에 직접 한국 식품을 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미국 사람들이 주식과 곁들여 먹을 수 있게 김치를 활용한 시즈닝, 잼, 소스를 내놓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때 인종 차별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치 냄새 난다'는 표현도 옛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며 미국에서는 발효 식품 열풍이 불었고 콤부차와 함께 김치가 건강식으로 주목받았다. 한국의 최신 유행 식품을 많이 판매하는 트레이더조, 유기농 식품을 주로 다루는 홀푸드, 대용량 제품을 많이 갖춘 코스트코, 가장 대중적인 장보기 장소인 월마트까지 가지각색의 오프라인 마트에서는 다양한 회사가 만든 김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치를 만드는 제조사가 한인 회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월마트에서는 미국의 사우어크라우트(유럽의 양배추 발효 식품) 전문 제조사인 클리블랜드키친에서 만든 양배추 김치가 인기다. 한국인이 아닌 유럽계 오너가 운영하는 회사로 김치가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팔기 시작했다.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는 "미국식 김치는 한국 김치보다 양념의 수나 양을 줄이고 시원한 맛을 강조해 샐러드처럼 즐길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농심·코스트코 합작 '돈코츠라면', 신라면보다 인기


넘버 원 돈코츠라면, 넘버 투 생생우동, 넘버 스리 핫&스파이시(육개장 사발면).


지난달 19일 농심 아메리카에서 영업 담당으로 일하는 브랜든에게 미국 코스트코에서 잘 팔리는 농심 라면 제품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코스트코가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식품 매장을 특화한 LA의 코스트코 비즈니스 센터에서 취급하는 농심 라면이 여섯 가지인데 그중 한국 라면의 대표 선수 '신(辛)라면'은 '탑3'에 끼질 못한다는 것. 대신 돈코츠라면과 생생우동이 더 인기라고 한다.

돈코츠라면은 미국에서만 팔리는 제품인데 그도 그럴 것이 농심과 코스트코가 손잡고 만든 현지화의 결과물이다. 코스트코가 전 세계 라면 회사들에 돈코츠라면을 상품화할 수 있는지 물었고 농심이 발 빠르게 움직여 일본 회사를 제치고 코스트코의 유일한 돈코츠라면 제조사가 됐다. 기름에 튀기지 않은 생생면이 강점인 생생우동은 미국에서 농심만 파는 제품이라 오래전부터 인기가 높았다. 이들이 미국 전역의 작은 식당들에서 돈코츠라면, 우동으로 소비자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춘 신제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석 달 전인 지난해 10월 첫 등장한 '신라면 골드'는 미국에서 유행 중인 닭 육수(Chicken broth)의 맛을 담아냈다. 회사 측은 파슬리 플레이크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익숙한 닭 국물 맛에 서양식 스튜 맛이 조화를 이루게 했다. 브랜든은 "월마트에서는 출시 두 달 만에 신라면 골드가 육개장 사발면을 제치고 농심 라면 판매량 3위에 올랐을 정도"라고 말했다.




만두에 이어 밥까지… 냉동 시장 석권 노리는 CJ


지난달 20일 방문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몬트의 CJ제일제당 공장. 가로로 누운 거대한 원통 속 두 개의 날개가 하얀 밥을 휘젓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 입맛에 맞춰 찰기가 없는 밥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볶는 과정이 끝난 후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지나가자 새우, 고기 등 볶음밥 속 재료와 함께 섞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볶음밥이 시간당 1톤(t)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미국 냉동 볶음밥 중 실제로 밥을 볶는 것은 우리뿐"이라며 "다른 회사 제품들은 볶음밥 향을 첨가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미국의 5개 비비고(BIBIGO) 제품 생산 공장 중 제일 크고 가장 최근(2020년)에 문을 연 곳이다. 약 8만2,644㎡(2만5,000평) 규모의 공장에서 비비고 만두와 볶음밥, 김, 소스 등을 만든다. 볶음밥 생산 라인을 지나 또 다른 문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만두 라인이 등장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6개의 덤플링이 올라가고 뜨거운 김으로 찐 후 급속 냉동 과정을 거친다. 이후 간장 맛 조미료까지 넣어 포장되면 비비고 만두 4종 중 현재 가장 인기가 많다는 '스팀 덤플링'이 완성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미국서 판매되는 다른 나라 회사들의 냉동 덤플링은 찌는 과정을 생략한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로 미국 만두 시장 1위를 석권했고 그 기세를 몰아 냉동 밥 시장에서도 빠르게 세를 키우고 있다. 비비고 볶음밥은 올해 미국 시장 누적 매출액 약 1,3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커진 수치다. CJ제일제당이 인수한 미국의 대형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의 전국 유통망과 시너지 작용을 일으킨 결과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강원철 CJ제일제당 아메리카 GSP 경영리더는 "비비고 브랜드의 미국 침투율이 현재 10% 수준으로 성장 가능성이 아직도 높다"고 강조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