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 분야에 '로즈 다이어그램'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1850년대 크림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파악한 군인의 사망원인을 보여주는 통계표다. 이 통계표의 결론은 놀랍게도 전쟁 중 제일 높은 사망원인은 전투 중 부상으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후송된 병원에서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 위생상황과 야전병원에 대한 지원이 열악해서 치료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고, 2차 감염으로 사망자가 늘었다는 전쟁의 처참함을 보여준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군인의 목숨도 지키면서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좋은 무기를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야전병원을 확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계로 보여줬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통계표를 만든 사람이 바로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 나이팅게일이라는 점이다. 나이팅게일은 실제로 여러 독지가와 본인의 사재를 털어 야전 병원시설에 투자했고 실제로 사망자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기 쉬운 다이어그램으로 만들어서 영국 본토로 보냈다. 차트의 각 꽃잎은 매달 사망한 군인 숫자를 보여주는데, 꽃잎은 안쪽부터 부상에 따른 사망자, 기타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 가장 바깥쪽은 질병에 의한 사망자를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이 차트는 아주 큰 울림을 줬다고 한다. 영국 국민들과 정치가들은 젊은 군인을 지키기 위해 야전병원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 결과 야전병원에 대량 투자가 이루어졌고, 나아가 현대 보건학의 기틀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를 간호하기도 했지만, 사망원인을 분석·측정함으로써 군인의 목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데이터로 보여줬기에 진정한 백의의 천사가 됐던 것이다.
이렇듯 시각화된 측정·데이터의 힘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특히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형적 가치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가 시각적으로 보여지고 쉽게 파악된다면, 더 많은 ESG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ESG에 대한 일종의 랭킹 매기기인 'ESG평가'도 중요하지만 ESG 성과에 대한 '화폐적 측정'에 대해 아쉬움과 요청이 상존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핫 이슈인 IFRS의 글로벌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논의를 보더라도, 경제주체의 ESG 성과는 멀지 않은 미래에 숫자로 측정되고 재무제표로 공시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기에 ESG 분야에서도 나이팅게일식의 데이터 시각화는 꼭 필요하다 하겠다.
2023년 11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600여 개 기업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사회(S) 관련 프로젝트의 임팩트를 측정하는 기업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나아가 DE&I 분야의 전략이 없는 기업은 27%, 임시방편적인 전략만 있는 기업은 20% 정도에 그치는 정도이며, 사회전략에 앞장선 것으로 분석된 기업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ESG 분야의 현실을 숫자로 드러내려는 노력 자체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미래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줄 것이다.
동 기사에서는 ESG를 높이기 위한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 제일 마지막이 '올바른 방법으로 사회영향을 측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ESG 분야에서도 나이팅게일의 로즈 다이어그램과 같은 측정 노력이 지속적으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