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앞에서 초라했던 2023년을 보내며…

입력
202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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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예년처럼 교수신문에서는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제시됐다. 올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사자성어로 정리됐다. '이익이 보이면, 의로움을 잊었다'는 뜻이다. 거꾸로 해석한다면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내세웠던 한국 특유의 K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렇다. 불행히도 올 한 해 한국에서는 견리사의의 정반대인 견리망의가 세상에 퍼졌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중심의 공동체정신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편협한 이기심이 채운 것이다. 당연히 2024년에는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변해야 할까. 시간을 대하는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굳이 비유한다면, 그리스 신화의 카이로스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시간을 관리하는 두 명의 신이 있다. 시간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와 시간을 기회로 만드는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태초의 시간의 신으로 파괴적이며 세상의 시간을 잡아먹는 신이다. 그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힘을 가지며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반면 카이로스는 시간을 기회로 만든다.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 붙잡아 놓고 그 속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당연히 모두 카이로스를 만나기를 원하지만, 문제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카이로스는 젊고 잘생겼지만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앞쪽 머리카락은 길지만 뒤쪽 머리카락이 없다. 워낙 빠르므로 마주하기도 어렵고, 설령 마주한다고 해도 빨리 잡지 않으면 뒤쪽 머리카락이 없어 잡을 수가 없다. 카이로스는 또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기회의 시간이 왔다면 저울처럼 정확하게 판단하고, 칼 같은 빠른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내년을 의미 있는 해로 만들려면 카이로스처럼 행동해야 한다. 모든 측면에서 내년은 올해보다 혼란스럽고, 신속한 판단과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지구촌의 불확실성이 유난히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중 패권경쟁의 강도는 계속 높아지고,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70개국 이상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의 국가에서 정국이 뒤바뀔 수도 있는 큰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불확실성과 혼란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이 성공의 현대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한국전쟁과 동서 냉전, 구소련 붕괴 이후 세계화라는 혼란에서 성공의 기회를 제대로 잡았기 때문이다. 모든 위기에는 기회가 있고, 모든 기회에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 불확실성에서 기회를 보면 성공하고, 어려움으로만 여기고 주저앉으면 실패하는 것이다.

미국 기업가 정신의 대부로 불리는 하워드 스티븐슨 하버드대 교수도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기회포착의 정신"이라 주장한다. 그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을 때가 위기이며,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기회포착"이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스티븐슨 교수가 강조한 기업가 정신은 평범한 일반 시민의 마음가짐과 행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4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상호배려와 존중으로 구태를 혁신하고 보다 문명 된 상태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견리망의'의 2023년 우리가 경험한 불편을 살피고 개선하는 2024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세계 중소기업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