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67)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검사 시절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게 강압수사를 받아온 10대 청년의 불법 구금을 방조하고 별건 수사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 측은 경찰과 김 후보자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6일 한국일보가 분석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관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문(2022년 12월 14일)에 따르면, 윤동일씨는 1990년 12월 제9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뒤 구속됐다. 윤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잠 안 재우기, 구타, 전기고문 위협 등 각종 가혹행위를 당했다.
윤씨는 12월 15일 오후 3시 경찰에 연행돼 이춘재가 저지른 강간살인 사건에 대한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경찰은 명백한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계속하기 위해 윤씨에게 전혀 다른 사건인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별건 구속했다. 당시 수원지검 검사로 경찰 수사를 지휘한 김홍일 후보자는 12월 18일 오후 2시 25분부터 화성경찰서 정남지서 숙직실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윤씨를 대면 조사했고, 조사 중 72시간의 긴급구속기간이 만료했는데도 당일 오후 3시 12분까지 영장 없이 조사를 계속했다.
진실화해위는 김 후보자가 당시 윤씨가 불법 구금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도 강제추행 혐의로 우선 구속한 뒤 연쇄살인사건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했다고 판단했다. 인권 옹호라는 검사의 기본적 역할을 망각하고 경찰의 불법 행위를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검찰 재직 시절 조직폭력배와 마약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강력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윤씨는 핵심 혐의인 강간살인 사건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강제추행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윤씨가 강압 수사에 못 이겨 자포자기 상태로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실제로 경찰은 강제추행 사건 피해자의 진술 조서와 고소장을 받는 과정에서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알려줬고,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할 때 피해자조차 알지 못하는 병원 소견서까지 첨부했다. 사건 피해자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경찰 수사 당시 윤씨와 대면했는데, ‘어두워서 안 보인다. 윤씨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석방된 지 10개월 뒤 암 판단을 받고 1997년 사망했다. 윤씨 측은 유죄가 확정된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윤씨의 친형 윤동기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동생은 경찰의 잘못으로 조작된 수사를 받았지만, 당시 지휘 검사였던 김 후보자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본다. 그런 분이 고위 공직자로 지명돼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 측은 진실화해위 결정 내용과 관련해 "당시 적법하게 수사지휘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