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모든 노무제공자가 업무 계약 체결 시 활용할 수 있는 '공통 표준계약서'를 내놨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미 있는 시도지만, 강제 사항이 아닌 만큼 현장 정착을 위한 정부 노력과 추가 입법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6일 고용노동부는 노무 제공자가 사업주와 계약 시 활용할 수 있는 공통 표준계약서와 가전제품 방문점검·판매 직종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노무 제공자는 통상적인 '근로자' 신분은 아니지만, 타인의 사업을 위해 본인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을 뜻한다. 배달 노동자, 가사·돌봄 노동자, 방문 점검원, 학습지 교사 등으로 올해 기준 약 42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간 근로기준법 등 법적 보호 밖에 놓인 이들을 위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았다.
고용부는 "노무 제공자 실태조사 결과 서면 계약을 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거나 계약 내용을 잘 모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며 "노무 제공자와 사업주가 보다 동등한 지위에서 계약조건에 관한 기본 사항을 공정하게 정하고 준수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를 제정했다"고 밝혔다.
공통 표준계약서에는 △계약 기간, 계약 변경, 보수·수수료 지급 등 계약 조건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부당한 처우 금지 △계약 해지, 손해 배상, 분쟁 해결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기반해 만든 가전제품 관련 직종 표준계약서에는 '고객 대면'이라는 직종 특성을 반영해 △고객의 폭언·폭행으로부터 보호 규정 △고객정보관리·영업비밀준수 등 계약 당사자 간 지켜야 할 사항이 포함됐다. 표준계약서 양식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제정 자체는 의미 있지만, 실효성이 있으려면 현장 정착을 위한 구체적 확산·이행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이드라인' 성격이라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별도 제재가 없어서다. 앞서 국토교통부가 대리·퀵·택배기사, 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웹툰작가 표준계약서를 마련했지만,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 중 표준계약서를 체결한 비율은 6% 수준에 불과하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표준계약서는 좋게 말하면 '연성 규제', 나쁘게 말하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제도"라며 "업종·직종별 맞춤형 권익 보호를 위해서 연성 규제가 필요하지만 그 핵심은 '노사 교섭을 통한 단체교섭 활성화'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부가 표준계약서 활용과 관련한 노사 교섭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도 "표준계약서 마련과 함께 이행·실효성 정책, 이해당사자 행동강령을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 설명회, 지방관서·노무사회 홍보 등으로 사용을 권장하고 사용 실태 역시 점검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표준계약서 양식 마련과 발표도 필요하지만 강제조항이 아니라 실효성이 적다"며 "보다 근본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할 방안이 필요하며 국회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