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여 개 언론사 기사의 진위 여부를 검증해 올리는 'SNU 팩트체크'에 2022년 등록된 '정치인 발언' 기사 비중이다. 2018년 38%, 2019년 39%, 2020년 23%, 2021년 31%로 편차는 있지만, 민심과 표심에 호소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팩트체크의 단골 메뉴다.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발언에 더 신중을 기할 법도 하건만 이념의 양극화와 확증 편향이 심화하는 흐름에 편승해 정치가 진실을 외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더 기승부릴 가능성이 크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살펴봤다.
정치는 세력을 기반으로 한다. 강력한 지지층은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지지자의 요구를 만족시켜 영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이 과정에서 악용하는 가장 큰 동력으로 '적개심'이 꼽힌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을 앞둔 2021년 말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조직폭력배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검언유착' 의혹이 떠들썩했을 때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는 "사실이 아니어도 좋다"로 시작하는 글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통화 녹취라며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들은 각각 '조직폭력배' 와 '검언유착'을 소재로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적개심을 자극했다.
적개심은 혐오 정서에 편승하기 마련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군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킨다"고 운을 띄우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끄덕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언론과 정치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헤드라인을 채우려는 정치인과 자극적 보도를 노리는 언론의 이해관계가 결합하면서 진실을 외면하는 '개소리'(Bullshit·사실 여부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의도적 발언)는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지난해 6월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중국에 있는 한국인이 등록할 수 있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범위에 비해 한국에 있는 중국인이 등록 가능한 피부양자의 범위가 훨씬 넓다"고 말했다. 중국엔 피부양자 제도 자체가 없어 단순 비교가 어려운데도 '중국인 건보 혜택' 논란이 불거지자 국내에 만연한 반중 정서를 노려 현안을 단순화한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전 "이미 무혐의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라고 반박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무혐의 처분'이라고 표현했지만,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불송치의 법적 성격을 놓고 결이 다른 해석도 있다. 다만 검찰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해 진행 중인 사안을 '사법 쿠데타'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건 정치적 셈법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여야 대표 모두 자신이 원하는 프레임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라면 가짜뉴스에 개의치 않은 것이다.
'확증 편향'(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은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의심을 무디게 만든다. 극성 지지자들은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는 사실을 접했을 때도 오히려 자기 진영 정치인의 말을 합리화 수단으로 삼는다. 정치인들은 이에 편승해 팩트 검증은 소홀히 하고 더 과감하게 발언 수위를 높인다. 이후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와 결합해 허위 정보의 폭발력이 더해지는 구조다.
'통계의 마법'은 확증 편향을 더욱 공고히 한다. 잘못된 수치로 여론을 오도하는 방식이다. 2022년 1월 박수현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라디오에서 방역 '엄격성 지수'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와 싱가포르가 44점으로 세계에서 최하위"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 통제 수위가 가장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공개한 엄격성 지수를 보면 실상은 다르다. 당시 한국이 45.37점으로 싱가포르(44점)와 비슷했지만 이는 중위권에 속하는 수치였다. 해당 통계로 국가별 방역 강도를 비교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거셌던 지난해 4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단순 '학폭 심의 건수'를 근거로 "문재인 정부에서 학폭이 증가했다"고 주장한 것도 통계 착시를 노린 사례로 꼽힌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구조적 원인부터 바꿔야 하지만, 여야는 각자에게 불리한 언론매체와 기사를 '가짜뉴스'로 몰아가는 데 급급했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시도하고, 윤석열 정부가 방송통신위원회의 '가짜뉴스 근절'을 강조한 배경에는 상대 진영의 공격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마저 무산됐다. 진실을 외면하고 떠들어대는 정치인을 근절하겠다며 여야는 헌법상 보장된 '면책특권' 폐지를 앞다퉈 강조했다. 2018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김용태 혁신위', 2022년 초 민주당 '장경태 혁신위', 지난해 초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 등에서 쇄신책으로 꺼낸 카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논의과정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지적만 무성하다 흐지부지됐다.
좀더 현실적 대책으로 여야가 각 당의 윤리위원회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실효성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1일 "면책특권 폐지는 특정 정치 진영을 겨냥한 (검찰과 경찰의) 무분별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여야가 의지가 있다면 허위 정보를 동원한 막말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의 저자인 영국 언론인 제임스 볼은 "개소리보다 진짜 정보를 다뤘을 때 정치인과 미디어가 더 유익한 결실을 얻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정치인과 언론, 수용자 모두의 노력을 통한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