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 평론가가 내년 총선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김건희 여사 문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꼽는다. 여야 극한 대립을 일삼는 정치 풍토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내걸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국정을 운영했겠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역수지를 비롯해 각종 경제지표는 경고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진영, 계층, 젠더 등 틈이 있는 곳마다 격화되는 갈등도 위험수위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여당은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반성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내놓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야당도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민생을 살리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견제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지난 2년간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상대를 공격하는 일에 몰두했을 뿐 그런 건강한 경쟁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청담동 주점에서 술을 마셨는지 여부,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옮겨야 하는지 여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쟁점이었다면 과장일까. 양 진영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고민하면서 대화나 혹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년 선거라고 다를까.
총선이 끝나도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이 남는다. 몇 달 후에 있을 선거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아슬아슬하게 30%대 초반에 걸려있는 대통령 지지율,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여당의 무기력, 집권 중반에 치러지는 평가적 성격의 선거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야당인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정치가 펼쳐질까.
대통령은 지금까지와 같은 일방적인 행보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경고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당정 관계를 당연시하는 태도, 검사 출신을 비롯한 측근을 중용하는 인사 행보에서 변화의 단서를 찾기는 어렵다. 어차피 타협과 협상으로 얻을 것은 없다고 여기고 '국민만 보고 간다',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등의 레토릭을 반복할 것이다. 대화보다는 검찰 수사를 통해 상대방에 흠집을 내면서 정국을 헤쳐 나가려는 방식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윤 대통령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당은 극단적인 저항과 발목잡기에 전념할 것이다. 이미 조짐이 보인다. 민주당 2중대 비례정당을 만들어 의석 몇 개를 건지려는 주변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현역 의원 중에도 공공연하게 '대통령 탄핵'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진보연합을 만들어 200석을 차지하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발상도 나온다. 민주당이 다시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은 높지만 과반에 조금 못 미치는 140석 정도를 얻어도 국정을 마비시키는 힘을 발휘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 대선이 온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의 탓을 하면서 표를 달라고 할 것이다. 그 선거 결과야말로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느 쪽이 이기든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문재인 정권 시즌2 아니면 윤석열 정권 시즌2가 될 것이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을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저런 정치에 어디 시민의 삶에 대한 고민이 끼어들 틈이 있는가. 과거를 반복하는 정치, 원점으로 회귀하는 정치가 지금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직시하고 고치려고 나서지 않는다면 총선 이후의 3년도 여전히 어두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