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내년 총선 승부수는 한동훈이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을 파격적으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했다. 1973년 서울 출생으로, 고리타분한 '영남당'의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여당 대표까지 여의도 기성 정치의 틀을 깼다. 혁신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반면,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통합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하는 점은 과제로 남았다.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2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늘 비대위원장으로 한 장관을 추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권한대행은 인선 배경에 대해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당내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와 중도층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면서 "또한 당원과 보수층에 총선 승리 절박함과 결속력을 불어넣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 장관은 비대위원장 수락 직후 장관직 사의를 표했고 윤 대통령은 면직안을 바로 재가했다. 그는 이임식 직후 취재진과 만나 "국민의 상식과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앞장서려고 한다"면서 "나침반만으로 그 길 곳곳에 있을 사막이나 골짜기를 다 알 순 없겠지만 지지해주시는 의견 못지않게 비판해주시는 다양한 의견도 경청하고 존중하면서 끝까지 계속 가보겠다"고 말했다. 수락 배경에 대해서는 "구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한 전 장관은 26일 당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비대위원장에 취임한다.
총선 3개월여를 앞두고 구원투수로 나선 한 전 장관의 당면 과제는 쇄신과 통합이다. 기성 정치권에 얽매이지 않고 원리원칙에 충실한 만큼 대폭적인 물갈이 공천에 부담이 없어 쇄신의 적임자로 꼽힌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국민의힘은 총선을 정권 중간평가 프레임이 아닌 혁신 경쟁 프레임으로 만들어야만 이길 수 있다"면서 "중도 보수가 바라는 공천 혁신을 가장 세게 할 수 있는 인물은 정치권에 인연이 없고 미래 권력으로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한 전 장관"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이 아닌 터라 정책 노선 변화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이태원 참사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제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 잇단 인사 잡음 등에 대해 한 전 장관이 확실히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김기현 전 대표처럼 무조건 방어하고 민주당 공격하기에 급급하면 중도층 견인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선전하려면 지난 대선 승리를 이끈 중도 보수 연합 재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현재 당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나 27일 탈당을 예고한 이준석 전 대표 등에 대한 포용이 시급하다. 다만 한 전 장관이 통합을 이끌 적임자인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한 전 장관은 정치 감각은 분명히 있지만 포용력이나 갈등 관리 능력 같은 경륜에서 오는 정치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은 한 전 장관이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특수부 검사시절부터 이어진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전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반면, 이런 인연은 '수직적 당정 관계'를 심화시키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향후 '김건희 특검법' 대응, 대통령실 참모 출신의 공천 등이 당정 관계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천관리위원장 인선도 시험대이다. 비영남권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공천관리위원장까지 검사 출신이 와서는 곤란하다"며 "중립적이고 정치 경험 많은 분이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