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어제 656조6,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확정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의과정에서 4조2,000억 원 감액하고, 3조9,000억 원 증액한 결과다. 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났는데,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증가율이다. 이를 두고 여당은 “정부 건전 재정 기조를 지켰고, 선심성 매표용 예산을 최소화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 동의하기 힘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올해도 어김없이 예산안을 놓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소위’에서 무려 3주간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 깜깜이 협상을 통해 예산을 주물렀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양대 정당은 표밭을 위한 예산 확보에 열을 올렸다. 야당은 정부안 중 공적개발원조(ODA)와 특수활동비 등을 감액해 새만금 사업 예산을 3,000억 원 증액했고, 이재명 대표의 간판 정책인 지역사랑상품권 예산도 전액삭감에서 3,000억 원 규모로 부활시켰다. 여당은 야당이 상임위 예산심사 때 1,814억 원 삭감했던 원자력발전소 관련 예산을 전액 복원했다. 논란이 된 대통령 순방 예산도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 지시로 올해보다 정부안에서 5조1,626억 원 삭감됐던 과학기술 R&D 예산은 6,000억 원 복원하는 데 그쳐 올해보다 4조6,000억 원이 삭감됐다. ‘짬짜미 예산’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건전 재정’ 역시 말잔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예산은 정부안보다 약간 감소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3.9%로 정부가 제시한 건전 재정 적자 비율 3.0%를 크게 넘어선다. 여기에 내년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낮은데도, 정부는 감세 정책을 고집하고 있어 재정 적자는 예상보다 늘어날 우려도 있다. 건전 재정은 씀씀이만 줄여서 되는 게 아니라 세수도 적정하게 관리해야 실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