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번스타인은 왜 아내를 죽도록 그리워했을까

입력
2023.12.23 11:00
15면
넷플릭스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넷플릭스 바로 보기 | 15세 이상

노년의 음악가가 피아노를 친다. 연주를 멈춘 후 회한 어린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한마디를 한다.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촬영 스태프의 얼굴에는 의외라는 반응이 드러난다. 그럴 만도 하다.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ㆍ브래들리 쿠퍼)의 복잡한 ‘남자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번스타인의 입에서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캐리 멀리건)가 거론된 건 다큐멘터리 촬영진에게는 예상 밖 일이다.

①나쁜 남자였던 음악 천재

번스타인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25세에 유명 음악인으로 떠오른다. 뉴욕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일할 때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병에 걸리면서 그는 공연 당일 대타로 발탁된다. 레너드는 제대로 된 연습 없이 연주회를 무난히 치러내며 깜짝 스타가 된다.

“미국인 최초의 세계적 지휘자”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으나 번스타인의 음악적 호기심은 클래식 밖까지 이른다. 뮤지컬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여러 문화예술인과 교류한다. 그는 칠레 출신 배우 펠리시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번스타인은 한 여자에 만족하지 않는 ‘나쁜 남자’다. 양성애자인 그는 남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난다. 결혼생활은 원활하지는 않으나 파경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번스타인은 의외로 가정적이면서 펠리시아를 사랑하고, 펠리시아는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기 때문이다.

②그래도 어쩔 수 없는 사랑

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펠리시아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중년이 돼 아이들이 크고도 번스타인의 외도는 계속된다. 펠리시아는 별거를 선언한다.

영화는 펠리시아의 관계를 축으로 번스타인의 음악 인생을 돌아본다. 보수적인 음악업계의 풍토와 달리 번스타인은 방송과 교습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는 유명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년 초연)의 곡들을 만들며 대중에게 더 다가간다.

번스타인이 왕성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펠리시아 덕이다. 친구 같은 아내 펠리시아의 조언과 조력이 없이 번스타인은 활동하기 어렵다. 번스타인과 펠리시아는 각자 자신들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나 보편적인 관계라 할 수는 없다.

③음악의 향연이 주는 재미

음악이 주는 기쁨이 큰 영화다. 번스타인이 작곡했던 곡들뿐 아니라 유명 클래식 곡들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두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와 캐리 멀리건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도 하다. 쿠퍼는 20대부터 70대까지의 번스타인을 보여준다. 커진 코에 얼굴을 파고든 주름, 거친 피부는 쿠퍼의 평소 모습과 완연히 다르다. 그가 영화 후반부 교회당에서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습은 번스타인에 빙의한 것처럼 보인다. 멀리건은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내의 슬픔을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차분하게 표현해낸다.

뷰+포인트
브래들리 쿠퍼가 연출을 겸했다. 당초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생각이었다(스필버그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스필버그 감독이 쿠퍼의 연출 데뷔작 ‘스타 이즈 본’(2018)을 보고선 감독 자리까지 제안했다. 쿠퍼는 대학원 시절부터 번스타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한다. 음악 영화인 만큼 좋은 음향기기를 갖추고 보면 더 빠져들 작품이다. 지난 6일 극장에서 먼저 선보였으나 관객은 7,218명에 그쳤다. 하루 최대 상영관 수가 전국 61개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흥행 성적표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1%, 관객 88%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