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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음악가가 피아노를 친다. 연주를 멈춘 후 회한 어린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한마디를 한다.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촬영 스태프의 얼굴에는 의외라는 반응이 드러난다. 그럴 만도 하다.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ㆍ브래들리 쿠퍼)의 복잡한 ‘남자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번스타인의 입에서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캐리 멀리건)가 거론된 건 다큐멘터리 촬영진에게는 예상 밖 일이다.
번스타인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25세에 유명 음악인으로 떠오른다. 뉴욕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일할 때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병에 걸리면서 그는 공연 당일 대타로 발탁된다. 레너드는 제대로 된 연습 없이 연주회를 무난히 치러내며 깜짝 스타가 된다.
“미국인 최초의 세계적 지휘자”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으나 번스타인의 음악적 호기심은 클래식 밖까지 이른다. 뮤지컬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여러 문화예술인과 교류한다. 그는 칠레 출신 배우 펠리시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번스타인은 한 여자에 만족하지 않는 ‘나쁜 남자’다. 양성애자인 그는 남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난다. 결혼생활은 원활하지는 않으나 파경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번스타인은 의외로 가정적이면서 펠리시아를 사랑하고, 펠리시아는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펠리시아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중년이 돼 아이들이 크고도 번스타인의 외도는 계속된다. 펠리시아는 별거를 선언한다.
영화는 펠리시아의 관계를 축으로 번스타인의 음악 인생을 돌아본다. 보수적인 음악업계의 풍토와 달리 번스타인은 방송과 교습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는 유명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년 초연)의 곡들을 만들며 대중에게 더 다가간다.
번스타인이 왕성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펠리시아 덕이다. 친구 같은 아내 펠리시아의 조언과 조력이 없이 번스타인은 활동하기 어렵다. 번스타인과 펠리시아는 각자 자신들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나 보편적인 관계라 할 수는 없다.
음악이 주는 기쁨이 큰 영화다. 번스타인이 작곡했던 곡들뿐 아니라 유명 클래식 곡들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두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와 캐리 멀리건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도 하다. 쿠퍼는 20대부터 70대까지의 번스타인을 보여준다. 커진 코에 얼굴을 파고든 주름, 거친 피부는 쿠퍼의 평소 모습과 완연히 다르다. 그가 영화 후반부 교회당에서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습은 번스타인에 빙의한 것처럼 보인다. 멀리건은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내의 슬픔을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차분하게 표현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