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성소수자에게 축복을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에 대해 출교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천주교가 진전된 한발을 내디뎠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신자들의 동요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서울대교구는 내부 논의 끝에 "혼인은 남녀 간 온전한 결합이라는 교회의 교리가 변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18일(현지시간)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제목의 교리 선언문(Declaration)을 내놨다. 교황청 내부 논의를 거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 승인한 문서다.
선언문은 크게 네 단락으로 이뤄졌다. 신앙교리부는 첫 단락에서 동성 결혼을 교리상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뒤 두 번째 단락에서 '축복'의 개념을 확대했다. 이는 2021년 교황청의 '동성 간 결혼 축복 의문에 대한 답변'을 의식한 조처라는 해석이다. 당시 교황청은 여러 곳에서 동성 커플 축복 문제를 제기하자 이 답변서를 통해 동성 커플 축복에 관한 한 교회가 "권한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실상 축복을 막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언문에선 축복을 더 폭넓게 해석했다. 답변서 때의 축복이 공식 전례상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선언문에선 축복에는 비공식적 축복도 있으며 교회의 정규 의식이나 미사, 혼인성사 같은 게 아니라면 축복이 가능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교회가 동성 커플에게 공식적으로 축복을 내려서는 안 되지만, 찾아와서 축복을 청하는 사람까지 굳이 내치지는 말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축복을 좁게 해석하고 금지하는 것을 일러 "복음화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자기도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엘리트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해뒀다.
이 때문에 이번 선언문을 두고 절충점을 찾기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절묘한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성소수자 문제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성애가 죄는 아니다", "관용 부족이 더 문제다" 같은 발언을 해 왔다. 이 때문에 교계 보수파의 반발이 거세지는 한편, 유럽 교구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움직임도 계속됐다.
교계에선 지난해 독일 주교회의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예수회 박상훈 신부는 "독일 주교회의가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전례에서도 허용하고 구체적 사항은 각 사제의 판단에 맡기는 결정을 내리면서 전체 교회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이 더욱 커졌던 상황"이라고 전하면서 "이번 교황청 결정은 천주교회 전체 차원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한발을 더 내디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염수정 추기경이 있는 서울대교구는 당장 '전례상 축복은 안 된다'는 점, '기존 교리는 여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대교구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교리)과 사목적 배려(신앙적 유익), 2가지 양립을 고민하고 반영해서 사목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동성 커플에 대한 비공식적 축복은 교리가 아닌 사목활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주교회의의 민범식 신부 역시 "이번 선언문을 보면 동성 커플이 '원할 때', 신앙에 대한 열망을 보는 '사목적 식별'을 통해 '적절한 방식'을 통해 축복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며 "모든 동성 커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축복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